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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야구전문기자] '선동렬 방어율'은 비단 야구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대학 학점을 이야기 할 때나 무언가의 확률을 이야기할 때도 자주 쓰인다. 모두 (상대에게) 절망스러운 것에 대한 비유다. 그만큼 선동렬(현 삼성 감독)의 0점대 방어율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2009년 '선동렬 방어율'을 재현하고 있는 선수가 있다. KIA 마무리 유동훈(32)이 주인공이다. 14일 현재 그의 평균 자책점은 0.57.
유동훈은 출발부터 '선동렬'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에겐 불같은 강속구도, 세상을 들썩일만한 재능도 없었다. 또 오랜 시간을 돌고 돈 뒤에야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동훈은 조금씩 최고의 자리를 향해 가고 있다. 중간 계투로 출발한 탓에 아직 세이브는 19개에 불과하지만 그는 8개구단 마무리 투수 중 유일하게 블론 세이브가 없는 투수다.
▲싱커 그리고 자신감
유동훈의 무기는 싱커다. 우타자의 몸쪽으로 크게 꺾이는 공은 땅볼 유도에 특효약이다. 싱커가 없었다면 지금의 유동훈도 없었을 것이다.
유동훈은 "2003년 시즌이 끝난 뒤 일본으로 교육리그를 갔는데 내 싱커에 일본 타자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3이닝 던지는데 삼진까지 5개나 나왔다. 그때 싱커를 단순히 가운데에서 몸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궤적을 그리도록 시도해 성공을 했다. 그러고도 자신을 갖지 못했는데 2004년 시범경기때 내 공을 본 김성한 감독님이 싱커를 적극적으로 쓰라고 지시하셨다. 이후 내 공이 됐다"고 말했다.
유동훈은 자신의 두번째 무기는 자신감이라고 했다. 누구도 내 볼을 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반기엔 성적이 좋았는데 점차 성적이 나빠졌다. 자신감이 떨어지니 자꾸 스트라이크 존 사이드 공략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고 그러다보니 볼넷이 많아졌다. 원래 한 가운데 보고 던지는 스타일인데 반대로 갔던 것이다. 볼넷으로 주자가 쌓이니 한방에 무너지곤 했다. 작년에 (윤)석민이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넌 어떻게 만루에서 그렇게 잘 막아내냐." 그랬더니 "형, 그냥 주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던지세요" 라고 하더라. 아.. 이거구나 싶었다. 내가 겁을 내면 던지기 전 부터 지는 것이다. 만약 올해 최고 타자인 김상현을 내가 상대하더라도 난 초구부터 내 주무기인 싱커를 한 가운데 보고 던질 것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한가지 들었다. "네 공을 믿고 던져라"는 야구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코치들이 그 말을 많이 한다는 건 그만큼 잘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동훈은 거침 없이 말을 이어갔다. "결과는 결국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다르다. 난 준비를 정말 많이 한다. 좋은 컨디션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과 보강 운동을 한다. 준비가 잘 돼 있으면 떨릴 것도 없다. 투수가 항상 좋을 순 없다. 떨어진 걸 운동을 통해 얼마나 빨리 올리느냐가 중요하다. 자신감은 결국 준비에서 나온다."
유동훈은 지난 2004년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그 시즌이 끝나갈 무렵 한국 프로야구를 크게 흔들었던 병풍에 휘말리고 만다. 이후 3년간 유동훈은 프로야구를 떠나 있어야 했다.
당시를 아프게 추억하던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역시 그때의 잘못된 선택이겠군요."
유동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것도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후회도 된다. 하지만…."
"신인(1999년)때 어느 정도 성적(7승9패)을 올렸다. 그땐 '그냥 그대로 하면 되나보다' 싶었다. 훈련을 게을리 했다. 시키는 거야 다 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러닝을 등한시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은 정말 자신과 싸움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 그땐 그게 너무 귀찮았다. 당연히 성적이 떨어졌다. 그래서 그냥 나는 안되는가보다 하며 포기하기도 했다. 한 3년을 그렇게 허송세월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 하체 훈련을 열심히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때 갑자기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후 정말 열심히 하체 훈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했다.
싱커도 원래 던질 수 있는 공이었다. 2004년 부터 잘 된건 특별히 누가 가르쳐 줘서가 아니다. 하체 훈련을 제대로 하면서 내 공에 힘이 붙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싱커가 살아났다. 이승엽의 말이 진리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니까 주위에서도 날 도와주려 하더라. 열심히 하면 누군가 꼭 알아봐 준다.
신인 시절 난 왜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후회다. 솔직히 말해 그때 열심히 해서 지금 성적을 냈다면 대표팀에 뽑혀 당당히 군대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그랬다면 이미 FA도 했을 거고. 잃어버린 6년이 다 아깝지만 첫 3년이 가장 후회된다. 그런 후회를 두번 다시 남기지 않기 위해 하루 하루를 그냥 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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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투에 약하다는 이미지는 '혹 체력 훈련을 게을리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유동훈의 답은 달랐다.
▲곁눈질 하지 않고 내 길을 간다
가보지 않은 길이 있다. '저리로 가보면 어떨까?'란 의문은 늘 우리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길이 '다른 누군가처럼 재능을 타고나지 못해' 갈 수 없는 길이라면 더욱 그렇다.
유동훈은 최고 구속이 140km 정도다. 지금은 150km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대는 투수들이 넘치는 시대다.
유동훈 처럼 팔을 밑으로 내려 던지는 투수(사이드암,언더핸드) 중에도 150km를 넘기며 위력을 배가시키는 투수들도 있다. 부럽지 않을까.
"가끔 공 빠른 투수들 볼때 '한 5km 정도만 나한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특히 임창용 같은 선수를 보면 내 공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부럽지는 않다. 삼진을 뻥뻥 잡아내는 투수들이 시원해 보이긴 하겠지만 그러러면 투수가 너무 힘들다. 난 그저 지금의 내가 좋다. 빨리 던져 빨리 맞혀 잡는게 편하다. 단 내 목표가 한가지 있다. 마무리 투수로 꼭 30세이브를 해보고 싶다. 임창용 처럼 광속구를 앞세운 30세이브도 의미 있지만 나처럼 싱커로 30세이브 한 투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럼 지금 아마추어에서 언더핸드로 던지는 투수들에게도 조금은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TIP : 유동훈의 싱커는 그립만 보면 투심 패스트볼에 가깝다. 그러나 유동훈은 굳이 투심이라는 표현을 쓰고싶지 않다고 했다. 던지는 순간 손가락 움직임은 싱커 방식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싱커로 불리는 게 편하다"고만 했다.
비슷한 케이스가 SK 조웅천이다. 조웅천 역시 싱커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싱커는 사실 체인지업 그립으로 던진다. 하지만 조웅천은 2년 전까진 굳이 사람들의 평가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어쩌면 둘 모두 '최대한 내 무기를 감추고 싶은' 투수의 본능에 충실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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