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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펜싱의 ‘에이스’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은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어펜져스’(어벤져스와 펜싱의 합성어) 동료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오상욱은 2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파레스 페르자니(튀니지)를 15-11로 물리치고 대한민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고등학생이던 2014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오상욱은 10년 만에 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자리에 섰다. 2021년 도쿄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 이어 두 번째 금메달이다. 이번 금메달로 세계선수권대회(2019년), 아시아선수권대회(2019·2024년), 항저우 아시안게임(2023년) 등 한국 펜싱 선수 최초로 ‘개인전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오상욱에게 ‘어펜져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어펜져스의 시작은 2012년 런던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우영, 오은석, 김정환, 구본길로 이뤄진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당시 결승에서 루마니아를 꺾고 사상 첫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일궈냈다.
국민들은 뛰어난 실력과 깔끔한 외모를 갖춘 이들에게 ‘어펜져스’라는 별명을 선물했다. 당시 멤버 중 하나였던 원우영은 이번 대회 남자 사브르 대표팀 코치로 오상욱을 이끌고 있다. 이날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자기보다 훨씬 큰 오상욱을 끌어안고 번쩍 들어 올린 주인공이 바로 원우영 코치다.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은 결코 아니었다. 동고동락했던 형들의 존재가 컸다. 2살 위인 ‘단짝’ 김준호와 함께 선배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형들은 동반자인 동시에 선의의 경쟁자였다. 끊임없이 서로 힘을 불어넣은 동시에 동시에 채찍질했다. 그 결실이 2021년 도쿄올림픽이었다. 한국 남자 사브르는 런던 대회에 이어 단체전 2연패(2016 리우 대회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 미개최)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도쿄 대회에서 형들에게 의지하던 막내 오상욱은 이제 팀에서 고참이 됐다. 맏형 구본길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김정환, 김준호는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후 대표팀을 떠났다. 이제는 새로 합류한 후배 도경동, 박상원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가 됐다. ‘어펜져스 3기’를 구축해야 하는 임무가 오상욱에게 떨어졌다.
오상욱은 이번 올림픽에서 월등한 실력을 뽐냈다. 매 경기 초반부터 상대를 압박했고 쉽게 경기를 이겼다. 하지만 금메달까지 오는 과정이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다. 올해 5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그랑프리대회에서 8강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그것도 세계랭킹 78위 선수에게 덜미를 잡혔다. 이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도 개인전 16강에서 떨어지는 부진을 겪었다.
부진은 이유가 있었다. 손목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경기 중에도 계속 통증이 신경 쓰이는 듯 부상 부위를 자주 만졌다.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부상 때문에 안 된다’라는 생각에 경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그에게 찾아온 가장 큰 시련이었다. 잠시 검을 내려놓기도 했다.
오상욱은 슬럼프에 대해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했는데도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며 “부상에 너무 기대다보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냥 몸을 최대한 굴려보자는 생각으로 운동한 것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위기를 극복한 오상욱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올림픽 개막과 함께 컨디션과 자신감이 최절정에 올랐다. 파리의 유명한 명소인 그랑팔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오상욱은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에도 인터뷰 내내 동료를 잊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개인전 금메달을 따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땄을 것이다”며 “그만큼 다른 팀원들도 실력이 월등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전 금메달은 땄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중요한 단체전이 남아 있다. 동료와 함께 영광을 나눈다는 점에서 단체전 금메달은 더 소중하다. 오상욱은 “엄청 기쁘고 쉬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단체전까지 금메달 따고 편히 쉬겠다”며 “팀에 의지하고, 팀도 나를 의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