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상반기 한국영화 新경향 3가지

  • 등록 2009-06-30 오후 2:02:46

    수정 2009-06-30 오후 3:32:55

▲ '과속스캔들'과 '워낭소리'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2009년 상반기가 저물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는 '한국 영화 가뭄기'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예년에 비해 개봉작 수가 적어 한 달에 서 너 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계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며 또 다른 발전을 예고했다. 올해 상반기 두드러졌던 한국 영화의 새로운 경향을 3가지로 정리했다.

◇ 웰메이드 가족 코미디 영화 대두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가장 크게 흥행한 영화는 지난해 12월 개봉해 올해 초까지 상영된 강형철 감독의 ‘과속스캔들’ 이었다. 이 영화는 지난 2월까지 약 8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7위까지 올라섰다. ‘과속스캔들’의 흥행은 올해 설 연휴 개봉작이었던 ‘유감스러운 도시’와 비교되어 더욱 화제가 됐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그간 한국 코미디 영화의 주류를 자처한 조폭코미디 영화의 적자였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도시’는 150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설 연휴의 특수와 이전 ‘조폭마누라’ 시리즈나 ‘두사부일체’ 시리즈가 올린 흥행과 비교했을 때 초라한 성적이었다.

‘유감스러운 도시’와 달리 ‘과속스캔들’은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웰메이드 가족 코미디 영화를 지향했다. 그 흔한 욕설 한 마디가 없었고 음악을 매개로 미혼모 미혼부 가정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렸다. 소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에 주안점을 둔 ‘과속스캔들’은 이전 한국 코미디 영화와 달랐다. 이런 장점들이 입소문을 탔고 흥행으로 이어졌다. 화장실 유머와 자극적인 욕설 및 폭력이 난무하는 조폭코미디 영화는 ‘유감스러운 도시’를 끝으로 종언을 고했다는 영화계 내부의 평가가 나왔다.

이러한 흐름은 4월 개봉한 ‘7급 공무원’의 흥행 성공과도 맥을 같이했다. 영화를 연출한 신태라 감독은 “‘7급 공무원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의 가족 코미디 영화처럼 남녀노소 모두가 봐도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 애를 썼다”고 밝혔다. 결국 ’7급 공무원‘도 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거뒀다.

두 작품을 배급한 롯데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팀의 임성규 과장은 “할리우드의 흥행작을 살펴보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웰메이드 코미디 영화의 비중이 높다”며 “자체 조사결과 가족관객들의 관람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과속스캔들’과 ‘7급 공무원’의 흥행은 한국영화에 웰메이드 코미디 영화의 가능성을 제시한 측면에서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의 변화로 읽힌다”고 밝혔다.

◇ ‘워낭소리’ ‘똥파리’ 등 독립영화 약진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 최고의 도발적인 사건은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정도다. ‘워낭소리’는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PD로 일하던 이충렬 감독이 자신의 유년시절 ‘소’에 대한 추억을 모티브 삼아 두메산골의 늙은 노부부와 소와의 사계절을 담은 작품이다.

▲ 영화 '똥파리'의 한 장면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월 15일 1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워낭소리’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과 관객들의 폭발적인 입소문에 흥행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이전까지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인 ‘원스’의 20만 관객 기록을 개봉 3주차에 넘어섰다. 이후 불붙기 시작한 ‘워낭소리’ 열풍은 개봉 6주차에 접어든 지난 2월 셋째 주말 박스오피스 집계에서 25만3000여 관객을 동원, 박스오피스 1위와 누적관객 122만6000여명을 기록을 세웠다. 한국 박스오피스 집계에서 개봉 6주차에 접어든 영화가 정상에 오른 것은 ‘워낭소리’가 유일하다.

‘워낭소리’는 결국 295만 관객을 동원하며 막을 내렸다. ‘워낭소리’의 흥행은 LA타임즈를 비롯한 해외 언론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화제가 됐다. 제작비 2억원도 들지 않았던 ‘워낭소리’의 흥행은 비단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워낭소리’를 필두로 한 독립영화의 흥행은 예년에 비해 확실히 두드러졌다.

4월에 개봉한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또한 독립영화계 흥행 대박 기준인 5만 관객을 훌쩍 넘어서 6월 마지막 주까지 12만 관객을 동원해 제작비의 다섯 배 가량을 회수했다. 같은 달 개봉한 기독교 독립다큐멘터리 ‘소명’ 역시 6만8000여 관객을 동원하며 독립영화 상영관을 중심으로 계속 관객을 받고 있다. 이처럼 배급과 홍보에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는 독립영화들이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에서 약진을 펼쳤다.

‘워낭소리’의 프로듀서를 맡은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은 “‘워낭소리’의 흥행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한국 영화계의 사건”이라고 전제 한 뒤 “‘이 영화의 흥행이 비정상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그만큼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들의 시선과 의식이 높아졌다는 증거이며 이는 한국영화계의 변화 조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이름값 보다는 입소문

올해 상반기 한국 영화계의 최고 마케팅 수단은 ‘입소문’이었다. 관객들의 입소문이 영화의 흥행을 좌지우지 했던 것. 실제로 ‘과속스캔들’을 제작한 디씨지플러스는 사전에 인지도가 없던 작품인 만큼 언론의 주목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 개봉 전 시사회를 통해 5만 관객에게 미리 선을 보였고 이는 ‘과속스캔들’이 재미있다는 입소문과 흥행으로 이어졌다. ‘워낭소리’의 흥행 또한 관객들의 입소문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영화계 마케팅 전문가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입소문이 부각되면서 상대적으로 배우나 감독의 이름값은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지난해 손태영과의 깜짝 결혼을 통해 연예계 핫 이슈로 떠오른 권상우는 올해 2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로 스크린에 복귀했다. 한류스타 권상우의 이름값을 앞세웠지만 60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쳤다.

▲ '박쥐'와 '마더'


이는 한국영화계의 흥행보증 수표로 불린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에게도 적용됐다. 두 감독 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자 몇 백만의 관객을 동원한 전작이 있는 감독들임에도 불구 신작인 ‘박쥐’와 ‘마더’는 각각 221만, 293만 관객을 모으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박쥐’나 ‘마더’가 개봉 첫 주에는 모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지만 이후 대중성과 오락성이 부족하다는 관객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 뒷심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영화 홍보사 퍼스트 룩의 강효미 실장은 “영화 개봉 초기에는 감독이나 배우들의 이름값이 관객을 불러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들의 입소문이 영화의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올해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배우와 감독들이 일반시사회나 무대 인사시에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부탁하는 것이 바로 입소문이다"며 "결국 입소문은 관객의 취향에 얼마나 맞는 영화를 만들어졌는지로 판가름 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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