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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달력과 포스터, 스티커, 다이어리 등이 들어 있는 ‘시즌스 그리팅스’ 상품은 나오자 마자 매물을 찾기 어려웠다. 콘서트 티켓도, 상품도 정말 어렵게 어렵게 온 힘을 다해 구해줬다. 창피함을 무릅쓰고 부탁해 백화점에서 모 스포츠 의류 홍보용으로 붙어 있던 방탄 소년단 포스터도 딸의 손에 안겨줬다.
살짝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평소엔 안아달라고 졸라야 겨우 한 번씩 손을 내밀어 주곤 한다. 그것도 엉덩이를 쭉 뺀 채. 하지만 콘서트 티켓과 상품을 구해줬을 땐 있는 힘껏 날 안아줬다.
이쯤 되면 단어 하나가 떠오를 것이다. ‘딸 바보.’ 그러나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난 진정한 의미의 딸 바보가 아니다. 그냥 그런 척 코스프레를 하고 있을 뿐이다.
진짜 속 마음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다른 집 아이들은 벌써 학원에 치여 얼굴 보기도 힘들다는데 노랑 머리한 아이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것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슬며시 걱정이 든다. ‘이렇게 공부를 안해도 되는 걸까…’ 두렵다. “우리나라 5학년 중 그 집 아이가 제일 편한 것 같다”는 옆집 아주머니의 농담 아닌 농담에 며칠 동안 우울했던 기억도 갖고 있다.
맘이 여려서가 아니다. 공부를 강요해도 좋을지 자신이 없어서다.
연예팀 후배가 한 연예인 부부를 인터뷰한 뒤 “아이에게 공부시킬 생각이 없다고 해 놀랐다. 공부는 점점 어려워지는데 얻는 것은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격하게 공감했다.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아니라 공포자(공부를 포기하는 자)를 양산하는 세상이 됐다.
그럴 능력? 절대 없다. 대학을 보내놔도 걱정이다.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등록금이 기다리고 있고 청년 실업 문제는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3~5세 아이들의 유아원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취업 대책은 약발이 먹힐 것이라 어찌 믿겠는가.
이런 세상에서 아이에게 공부만 강요해도 좋은 것일까. 우직하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스트레스 덜 받고 좋아하는 걸 맘껏 하면 몸과 마음만은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지 않겠나 자위하고 있을 뿐이다. 그 기대 하나로 난 오늘도 ‘딸 바보’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오늘은 딸 아이 생일 선물로 몇 년 전에 나온 방탄소년단 ‘희귀 앨범’을 사러 모처럼 레코드 가게를 찾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