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章)은 손자가 말하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모두 모아 놓은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새로울 것 없는 말 들이다. 상대와 나를 잘 알고 팀과 하나가 되며 충실하게 준비한다는 것. 다들 한번쯤을 생각해 본 대목들과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항목을 전쟁에 앞서 점검한다는 점이다. 군주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 5개 항목이 원활하게 이뤄졌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5가지 중 모자란 것이 있다면 전쟁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손자는 말하고 있다.
바꿔말하면 승리는 이미 시작하기 전 결정이 돼 있다는 것이다. 손자는 "승부는 이미 전쟁 전 가상 전쟁에서 판가름난다. 난 (그 과정을 통해)승부를 훤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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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상대가 맞이해 싸울 수 있는 적인지 아닌지를 알면 승리한다. 적과 비교해 우세할 경우와 열세한 경우에 따라 용병을 달리할 줄 알면 승리한다. 깊이 숙고하여 대비함으로써 대비가 없는 적을 상대하면 승리한다.
상대의 전력을 꼼꼼히 탐색하고 우리 팀의 전력과 비교한 뒤 싸움에 나설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페넌트레이스에서 유리한 전략이다.
다승으로 우승 여부를 결정하는 만큼 유리한 승부와 불리한 승부를 잘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성근 SK 감독은 시즌 전 '예상 승수'를 내놓는데 모두 상대의 선발 로테이션까지 감안, 시즌 전체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목할 것은 '불리한 승부'에 있다. 버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간혹 상대 1선발, 혹은 특별하게 강한 흐름이 있는 팀과 정면대결을 피해야 할 때가 생긴다.
우리 팀의 선발 카드를 아껴 두는 것이 장기레이스에선 더 유리하다. 하지만 포기하는 승부란 없다.
고효준에게 주어진 임무는 15번 정도의 선발. 선발 로테이션이 구멍나거나 상대가 버거울 때가 그가 등장해야 할 순간이다.
물론 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SK는 이 승부에서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고효준과 같은 카드의 퀄러티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렇게되면 불리한 승부서도 의외의 소득을 짭짤하게 거둘 수 있다. 팀을 강훈련을 통해 "모두가 주전"이라는 의식으로 만들어 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대 결과도 있다. 지난해 후반기 SK는 1,2선발 김광현 카도쿠라 카드를 상대 1,2번과 잇달아 맞상대를 붙였다. 전반기의 기운을 이어가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1,2번 투수가 주춤하자 팀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커졌다. SK가 후반기서 고전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3. 상하(上下)가 하나의 마음이 되면 승리한다.
이제 은퇴를 선언한 김재현과 일화다. 지난 2007년 한국시리즈, SK는 두산에 1,2차전을 모두 패했다. 휴식일이던 월요일 자율 훈련을 마치고 나온 김재현은 이렇게 말했다.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린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나머지는 감독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김정준 코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시리즈를 앞두고 투수들 페이스가 나빠 고민이 많았다. 결국 1차전서 잘 나가던 김광현이 5회를 넘기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때 감독님이 정우람 카드를 꺼내들었다. 술렁이던 덕아웃에 안정감이 흘렀다. 아무도 생각 못했던 카드였는데 성공이었다. 모두들 '감독님이 어떻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김 감독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작은 문턱 조차 스스로 다리를 들어 넘지 못할 만큼 허리 디스크가 심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진통제 주사를 맞는 걸로 대신했다. 우승 뒤 마무리 캠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캠프때면 매일 반복되는 미팅, 쉼 없이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서로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은 SK를 가진 힘 보다 강한 팀으로 바꿔 놓았다는 의미다.
5. 장수가 능력이 있고 군주가 장수의 지휘권에 간섭하지 않으면 승리한다.
김성근 감독은 프런트가 현장 문제에 깊숙히 간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전권을 휘두른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상의할 문제는 상의하고 진행한다.
다만 야구를 풀어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도 양보가 없다. 그 권위가 흔들리면 결국 팀이 약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SK 불패의 병법'에서 군주는 곧 감독으로 묘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전쟁을 치르는 선수단의 가장 윗 자리는 감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에선 군주를 프런트 수장(사장 혹은 단장)으로 삼고 장수를 감독이라 표현해야 할 듯 하다. 프런트의 입김이 그 어느때보다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롯데와 삼성은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감독을 경질했다. 나름의 사연이 있었겠지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롯데의 경우 로이스터 전 감독의 운영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장병수 사장은 사석에서 "왜 사장이 경기 운영(선수 기용)에 간여하면 안되느냐"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SK는 철저한 관리와 운영의 분리를 통해 최강팀이 됐다. SK가 끝까지 지금의 방침을 지켜낼 수 있을까. 또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팀들의 최종 성적은 어떻게 될까. 올시즌 내내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또한 손자가 제시한 '승리에 이르는 5가지 길'이 실제 야구에서 얼마나 통용되는지 분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