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의 거북이 인생..."내가 팔 반찬은 아직 수십가지"

  • 등록 2009-06-16 오후 1:07:26

    수정 2009-06-16 오후 1:25:20

▲ 김윤석(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충남 예산경찰서 강력계 형사 조필성(김윤석 분).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시골동네 특성상 그 또한 형사로서의 특출한 능력 따윈 없다. 후배를 꾀어내 일찍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은 기본, 동네 한량인 친구들과 고스톱을 치고 아내의 바가지와 딸의 타박에 한숨을 내쉬는 평범한 가장이다.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독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카리스마, 폭발하는 연기력... 이런 말들 들으면 요즘 참 난감합니다.”

영화 ‘거북이 달린다’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김윤석은 다소 억울한 마음을 내비쳤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내뱉으며 화면을 장악했던 ‘아귀’ 그리고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에서 연쇄살인마 지영민을 잡기 위해 폭주하던 전직 형사 ‘엄중호’ 두 캐릭터의 모습이 어느덧 자신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다는 이유에서다.
 
◇"'아귀' '엄중호' 왜 냄비 캐릭터만 기억해?"

“사실 제 필모그라피를 보면 아귀나 엄중호처럼 에너지가 센 캐릭터만 있던 것은 아닙니다. ‘범죄의 재구성’이나 ‘천하장사 마돈나’ 혹은 ‘즐거운 인생’에서는 그렇게 끓어오르는 느낌의 캐릭터들이 아니었거든요.”

김윤석이 지난해 ‘추격자’ 이후의 차기작으로 ‘거북이 달린다’를 선택한 이유는 극중 시골형사 조필성이 끓어오르고 폭발하는 캐릭터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탈주범을 쫓는 시골형사’라는 ‘거북이 달린다’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자칫 ‘추격자’를 연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김윤석의 판단은 달랐다. 조필성은 이전의 펄펄 끓는 느낌이 나던 아귀와 엄중호의 이미지를 상쇄시킬만한 매력적인 캐릭터였다는 것.

“반찬 가게를 예를 들자면 제가 손님들에게 팔 수 있는 반찬은 아직 수십 가지가 남았는데 계속 한 가지 반찬만 고집하면 손님들이 식상해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조필성이란 인물은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저의 또 다른 메뉴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김윤석은 조필성을 연기하기 위해 지난해 여름을 꼬박 충남 예산과 덕산에서 보냈다. 영화관이 없고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은 예산군이었기에 ‘추격자’와 ‘타짜’의 김윤석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김윤석은 실제 영화 속에 조필성이 살아가는 것처럼 편한 복장에 슬리퍼를 신고 읍내를 활보했다.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과 당구도 치고 술도 마시면서 마치 동네 사람인양 그곳의 정서를 체화했다.

◇"'추격자' 유명세, 가족들 불편 마음 쓰여"

“영화 속 용배 패거리로 나온 배우들 대부분이 대학로에서 함께 연극하던 친구들입니다. 그 친구들과 유유자적하게 시골 분위기에 묻혀 영화를 찍었습니다. 땡볕에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그곳 특유의 여유와 능청스러움을 만끽하며 촬영을 했죠.”
 
▲ 영화 '거북이 달린다'의 한 장면

그 덕에 ‘거북이 달린다’는 한 여름날 더위가 막 꺾이기 시작하는 오후 5시와 6시쯤, 개천의 그늘 막에 앉아 투망을 던져놓고 가벼운 음담패설과 농담으로 서로를 웃기는 남자들의 정서 같은 것이 배어있다. 그리고 잡아 놓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서로의 속내를 우스개 삼아 털어놓는 가장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런 감상의 진원지는 단연 김윤석이 연기한 조필성 형사였다.

“영화에서 코미디 연기는 거의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우습게 느껴지는 인물이 아니라 형사와 가장이란 위치 속에서 현실감 있는 인물로 보이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감독 역시 그런 부분에서 저와 의견이 많이 맞았구요.”

영화 속 조필성 형사는 큰 딸에게 걱정을 안기는 못난 아빠이기도 하다. 실제 김윤석 역시 두 딸의 아빠다. 김윤석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아빠가 배우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며 최근에는 큰 딸의 받아쓰기 숙제를 같이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작품이 끝나면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일종의 ‘코스’이기에 7월에는 가족여행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고 한다. ‘추격자’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지다 보니 어디를 가도 보는 시선들이 많아 가족들이 불편해지는 것이 마음 쓰인다고 한다.

◇ "늦깎이 배우, 거북이는 실제 내 별명"

“남들은 이십대에 혹은 삼십대에 이름을 떨치고 주목을 받는 것에 비해 저는 마흔살이 다 되어서야 영화판에 이름을 내밀었으니 거북이죠. 아내가 영화의 제목을 보고 딱 제 모습이랑 닮았다고 하더라구요 . ‘타짜’ 때 부터 만날 듣던 말이 ‘늦깎이 배우’ 이런 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번 영화가 더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래서일까? 김윤석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시각적인 효과나 비주얼은 좋지만 우리만의 감성과 정서를 이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며 ‘거북이 달린다’의 흥행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보였다.

사실 '거북이 달린다'에는 긴박한 스토리와 서스펜스, 소위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대결 같은 것이 없다. 대신 ‘거북이 달린다’에는 수갑이 발에 묶인 채 동네 강아지에 쫓겨 달려가는 조필성 형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동료 탓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책하며 찌개 냄비를 뒤집어 쓰는 조필성 형사의 페이소스가 있다. 무엇보다 조필성이란 캐릭터로 자신 안의 또 다른 메뉴를 선보인 김윤석의 판단과 자신감이 있다. 
 
▲ 김윤석(사진=한대욱 기자)

결국 관객들은 김윤석의 선택을 외면하지 않았다. 지난 11일 개봉한 ‘거북이 달린다’는 개봉 첫 주 50만 관객을 돌파하며 ‘터미네이터:미래의 전쟁’ 보다 많은 관객 수를 동원,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거북이' 김윤석의 판단과 자신감이 맞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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