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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꽤나 오랫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탈리아 세리에A의 명가 AC밀란이 3일 나폴리를 1-0으로 꺾고 리그 선두로 뛰어올랐다. 사실 ‘AC밀란’쯤 되는 클럽이 ‘1위에 올랐다’는 대목을 이슈화하는 것이 호응관계로 볼 때 썩 어울리진 않는다. 최종순위라면 모르겠는데 중간 과정에서 선두로 나섰다는 것이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은, 그럴만한 배경이 있었던 까닭이다.
믿기지 않게도 AC밀란의 1위 탈환은 무려 3년7개월만의 일이다. 최종 우승은 고사하고 AC밀란이 세리에A 1위라는 성적표를 받았던 기억을 찾으려면 2005년 봄까지 거슬러 가야한다. 밀란은 2004-05시즌 34R(2005년 5월1일)에서 유벤투스를 따돌리고 선두에 올랐던 이후 지금껏 순위표 꼭대기에 올라서지 못했다.
요컨대 2005-06시즌(최종3위) 2006-07시즌(최종4위) 2007-08시즌(최종5위)까지, 3년을 훌쩍 넘어서는 긴 시간동안 세리에A 최고 위치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으니 작금의 성과는 그야말로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올 시즌 역시 초반 분위기가 좋지 않았으니 또 반가운 일이다.
호나우지뉴를 영입하고 세브첸코도 불러들였으나 올 시즌도 AC밀란의 출발은 삐걱거렸다.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설이 아주 진지하게 수면 위로 올랐다는 것으로 그 심각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심차게 임했던 개막 1,2차전을, 그것도 볼로냐(0-1)와 제노아(0-2)라는 하위권 클럽을 상대로 패했다는 것은 밀라노 팬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9월18일 취리히(스위스)와의 UEFA컵 예선라운드 승리(3-1) 이후 확 바뀌었다. 이번 나폴리전 승리를 포함해 11경기에서 무려 10승1무.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스쿠데토 17회에 빛나는, 이제야 비로소 AC 밀란다운 성적이 나오고 있으며 덕분에 안첼로티 감독도 한 시름 놓았고 왈가왈부 많았던 밀란 선수들의 입지도 달라졌다.
터프가이 가투소가 돌아오면서 압박 강도가 높아지긴 했으나 전술의 구심점 피를로가 부상으로 출전치 못하는 허리라인의 힘도 온전치 않다. ‘썩어도 준치’라는 노련미로 버티고는 있으나 노쇠화가 극심한 수비라인은 여전히 불안함을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작금 AC밀란의 전력이 최상급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와중 정상에 올랐으니, 그래서 AC밀란에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성적도 성적이나 정신적인 부담을 털었다는 측면이 더 크다.
최근 2~3년간 AC밀란의 부진 속에는 암암리에 깔린 선수들의 패배의식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AC밀란급 선수들에게 ‘패배의식’이 어불성설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AC밀란급 선수들이기 때문에 왕왕 상대에게 덜미를 잡히는 자신들의 모습이 더욱 충격이었던 것이다. 누구를 상대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군대가 손쉽게 여겼던 적들에게 무기력하게 쓰러졌으니 그들에게 찾아오는 상실감이 꽤나 컸던 것이다.
매사 마찬가지이나,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흐름과 분위기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과정의 내용을 차치하고 지금의 결과가 반가운 것이다. 앞으로의 일정도 레체-키에보-토리노 등 약체들과의 매치업으로 이어지니 간만에 올린 돛에 순풍이 도움을 줄 공산이 크다.
측면미드필더로서는 어필할 요소가 떨어진 게 사실이나 여전히 매서운 ‘베컴의 오른발’은 분명 매력적이다. 베컴 입장에서도 밀란을 발판으로 대표팀 입지나 본인 커리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려는 의지가 강하니 시너지를 기대해도 좋겠다.
2003-04시즌 우승 이후 지난 시즌까지, 꼭 1단계씩(2→3→4→5위) 내리막길을 걸었던 AC밀란의 제대로 된 부활은 가능할 것인가. 간만에 로쏘네리 군단의 강한 맛을 기다리는 팬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베스트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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