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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장서윤 기자] "작지만 중요한 역할이라, 그냥 '거저 먹었다'는 얘기 듣기 싫어서 온전히 제 몫을 찾으려 했죠."(웃음)
영화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에서 극중 이병헌의 약혼녀 주연 역으로 분한 배우 오산하는 영화 속 인물처럼 차분하면서도 강단진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살인을 즐기는 연쇄 살인마와 그에게 약혼녀를 잃고 복수를 결심하는 남성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에서 약혼녀 주연 역은 초반에 짧은 분량 등장하지만 주인공에게 복수의 동기를 부여하는 무게감 있는 역할이다.
때문에 첫 영화에 도전하는 오산하에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앞 부분에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살해 위협을 당할 때는 두려움에 질리는 모습, 살해당하기 전에는 뱃속 아이를 지키려는 절박함이 묻어나야해서 여러 상황을 상상해봤어요. 짧은 등장이지만 '스펙터클한' 캐릭터였던 거죠."(웃음)
실제로 살인범 역의 최민식에게 차 안에서 구타를 당하는 장면에서는 부상을 입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찍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집에 와보니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더라구요(웃음)"라며 "개인적으로 '영광의 상처'를 하나 남겼다고 생각한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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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체가 된 채 비닐에 담기는 노출 장면도 있었던 터라 연기하기 전 적잖은 망설임도 있었다.
그는 "노출 연기가 부담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죠. 시나리오를 보고 수위가 좀 높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부담도 됐구요. 하지만 촬영 전 감독님, 최민식 선배와 충분히 많은 얘기를 나눠서인지 막상 슛이 들어갔을 때는 비교적 편안하게 했어요. 겨울에 맨땅에 누워 있어야해서 살이 에일 듯 춥긴했지만요"라며 담담히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첫 영화에서 이병헌·최민식이라는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것은 더할 수 없는 행운이었다.
특히 범인 역의 최민식과의 연기가 대부분이었던 그는 인간적으로도 최민식에게 큰 감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오산하는 "연기적으로는 많은 자극을 받았지만 인간적으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연륜이나, 내가 얼마나 더 겸손해져야할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셨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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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당시 몇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악마를 보았다'에 낙점된 오산하는 이 작품이 연기를 포기하고 싶어졌을 때 만난 영화라 더할 수 없이 소중하다.
2006년 KBS 드라마 '연어의 꿈'으로 데뷔한 그년는 MBC '크크섬의 비밀'에 이어 뮤지컬, 연극 무대를 거치며 기본기를 탄탄히 쌓아 온 중고 신인.
그녀는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겹쳐서 '더 이상 연기할 수 없겠다'고 포기하려던 순간 거짓말처럼 '악마를 보았다'를 만났어요. 믿을 만한 회사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됐구요. 뭔가 행운이 한번 열리면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어 요즘엔 하루 하루가 감사해요"란다.
이제는 마음 굳게 먹고 다시금 연기자로서 한 발씩 내디디고 싶다는 그녀는 내면의 아픔을 지닌 캐릭터에 많이 눈길이 간다고 했다. 스스로가 어려운 시절을 잘 헤쳐온 '강단' 속에 다져진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게다.
"영화 '가족'의 수애 씨나, 드라마 '청춘의 덫'의 심은하 씨 역할 같은 여린 듯 하지만 강한 여자의 모습을 연기해보고 싶어요"
이제 막 첫 영화로 연기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는 오산하의 조심스러운 바람이다.
(사진=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