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위시리스트]'풍선껌' 정려원도 이동욱도, 사랑 앞에 모두 유죄

  • 등록 2015-11-24 오전 7:40:00

    수정 2015-11-24 오전 7:40:00

‘풍선껌’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이모 두고, 나 안을 수 있어?”

여자의 ‘공격력’에 남자는 ‘수비욕’을 상실했다. 사람이 감정을 운용하는 데 정답이 없다지만 적어도 실패한 감정과 성공한 감정이 뭔지는 구분할 수 있다. 케이블채널 tvN 월화 미니시리즈 ‘풍선껌’이 23일 방송에서 선보인 9화, ‘이 모든 게 꿈이었다면’ 편이 그랬다. 정려원과 이동욱, 박희본과 이종혁, 김리나와 박원상 그리고 배종옥까지. 이들이 극중 그려낸 캐릭터의 사랑법을 심판대에 올린다면 모두 ‘유죄판결’을 받을 법했다.

라디오 PD 김행아(정려원 분)와 한의사 박리환(이동욱 분)은 인생 최대 고비를 맞았다. 친남매처럼 길러졌지만 돌고 돌아 남녀로 마주한 두 사람. 마음을 확인하기까지도 힘들었던 터라 앞으론 행복할 일만 가득할 줄 알았지만 다 큰 어른들의 사랑에 더 큰 어른들이 개입했다. 어려서부터 두 사람이 이성관계가 되길 경계했던 리환의 엄마이자 행아의 이모, 박선영(배종옥 분)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정신적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선영은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리환의 ‘가족 만들기’에 집중했다. 곧 행아와 리환을 떨어트려 놓는 일이었다.

행아는 이성적인 사고를 시작했다. “결국은 너였어. 처음부터 너였어. 다 너였어. 내 말, 틀렸어?” 리환의 진심어린 방어로부터 감정의 날을 세웠다. 밥 뚜껑을 열어주는 일도, 반찬을 얹어주는 일도 거부했다. “너 나쁜 사랑 못하잖아”라는 행아는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죄인이었다. “아니 나 할 수 있어”라면서도 못할 수도 있는 현실과 끝까지 싸워야 하는 리환 역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죄인이었다.

돈도 능력도 재력도 갖춘 홍이슬(박희본 분)은 리환을 향한 열병을 앓았다. 리환의 엄마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신(神)의 경지에 놓여있는 이슬. 그 힘을 이용해 행아를 리환으로부터 떨어트려 놓으려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걸 나는 할 수 있다는 설득은 협박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렇게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쟁취하려는 마음은 간절하다는 걸 알지만 상대의 상처를 해집은 비열한 방법이었다. “가질 수 있으면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가져도 된다. 자존심까지도. 만약 그런 게 남아있다면.”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자리를 먼저 박차고 일어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던 이슬은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죄인이었다.

박희본의 극중 극성맞은 엄마(박준금 분)는 사랑을 계산하는 죄인이었다. “엄마 저 좋아하는 사람있어요”라고 말하는 딸에게 “그게 뭐”라고 시큰둥한 대답을 던지며 공부하느라 머리가 다 빠진 ‘대머리 검사’ 사진을 들이밀었다. “결혼에 사랑이 끼어든 거 100년도 안 됐어. 너 할아버지 할머니 때만 해도, 얼굴도 안보고 결혼했어. 사랑 어쩌고저쩌고, 기왕 그렇게 살거면 왕자님이라도 만나던가.” 엄마로서 딸에게 가르칠 수 있는 ‘옳은 감정’은 아니었다.

끝내 아버지에게 “죄송해요”라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끝내 끔찍이 아끼던 아들에게 “누구세요”라는 말을 던진 선영. 알츠하이머라는 불가항력의 현실과 싸우는 그여도 죄는 있다. 오늘 해야 할 말, 어제 표현했어야 할 마음을 내일로 미룬 죄인이었다.

한참 어린 나이, 경력의 후배가 고백해도 진심을 숨기는 라디오 부장 조동일(박원상 분)은 두려움에 굴복했다. 그 역시 사람 좋아지는 일이 무서우면서 다른 이의 사랑법을 운운하는 라디오 작가 노태희(김리나 분)도 잘한 일은 없다.

이날따라 ‘풍선껌’은 유쾌함을 상실했다. 무겁게, 묵직하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어떤 인물의 상황에서든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꿈이었으면”이라고 말하는 리환의 내레이션에 시청자의 마음도 쓰렸다. 말대로 정말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예고편을 보니 아닌 듯 싶다. “넌 너대로 살아.” 행아에게 결국 아픈 말을 던지고 만 리환이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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