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에게 묻는다Ⅱ]전병호의 '팔랑이는 직구로 사는 법'

  • 등록 2008-04-21 오후 12:20:28

    수정 2008-04-21 오후 1:56:36

▲ 전병호 (제공=삼성라이온즈)

지난해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달인에게 묻는다' 시리즈의 시즌2를 시작하려 합니다. 이전 시리즈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들의 야구였다면 이번 시리즈는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전해볼까 합니다. '생존의 달인'이라고 할까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프로야구에서,1등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장기로 오랜 세월을 버텨낸 선수들에게는 그들만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땀의 냄새를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첫번째 주자는 삼성 전병호 입니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흑마구'란 말이 있다. 도저히 칠 수 없는 마력이 담긴 공이라는 뜻으로 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이런 이름이 붙을 공이라면 시속 160km를 훌쩍 넘는 불같은 광속구나 지난해 마쓰자카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덩달아 유명해진(그러나 실체는 알 수 없는) 자이로볼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한국 야구팬이라면 다른 이미지가 떠오르게 된다. 있는 힘껏 던져봐야 130km를 조금 넘는, 평균 120km대의 팔랑이는 직구. 거기에 이런 저런 지저분한 변화구의 조합. 바로 삼성 투수 전병호(35)의 공이다.  
 
▲한때 볼만 빨랐던 투수
전병호가 처음부터 이런 공을 던졌던 건 아니다. 그도 최고 145km는 찍을 수 있는 투수였다. 그가 데뷔한 1996년 무렵, 그 정도 스피드면 상당히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에 속했다. "쟤는 공은 빠른데 제구가 불안해서..."라는,지금과는 정 반대의 평가를 받았었다.

2년차인 1997년 그는 10승 고지를 밟게 된다. 그러나 방어율은 무려 4.93. '10승 투수'라기 보다는 '10승 해본 투수'라는 표현이 더 적당했다. 당시 그의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1.69였다.

이후 성적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입지가 크게 줄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남아있긴 하지만 140km가 넘는 좌완 투수는 일단 다른 선수들에 비해 생명력이 좀 더 길었다.

우선 답답한 마음에 군대를 가게 된다. 전병호는 "경쟁은 계속 치열해지는데 나아지는 것은 없고 해서 일단 군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때가 1999년말이다.

▲변화의 시작
대개의 도피성 입대가 그렇듯 다녀오면 다시 제자리에 서게됐다. 2001년 복귀했지만 오히려 그나마 장기였던 볼 스피드까지 느려지는 사태에 직면한다.

별 탈 없던 어깨에도 이상이 생기고 2004년엔 왼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수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전병호는 수술 대신 재활을 택했다. 삼십줄에 접어들며 내리막길이 뻔한 투수를 수술 뒤에도 기다려줄 팀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른 살 길을 찾기 시작했다. 변화구와 완급 조절이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그의 최대 장기인 싱커와 팔색 직구였다.

전병호는 "그전에도 싱커를 던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쓸 정도는 아니었다. 1km라도 빠르게 던지기 위해 애썼을 뿐 다른 건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벼랑끝에 몰리고 나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스피드는 아예 접어두기로 했다. 대신 싱커를 자유 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스트라이크 존에 넣었다 뺐다를 맘대로 할 수 있도록 던지고 또 던졌다.

부족한 스피드는 완급 조절의 힘을 믿기로 했다. 130km짜리 직구도 스피드의 차이와 볼끝의 변화만 있으면 타자를 속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배팅볼 타격 훈련에서도 힌트를 얻었다. 배팅볼은 타자가 치기 좋도록 일정한 리듬과 스피드로 던져주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배팅볼 투수도 사람인 만큼 가끔씩 다른 리듬과 스피드로 공을 던져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타자들의 스윙은 덜커덕 거렸다.

전병호는 무릎을 쳤다. '뻔한 직구 타이밍에 스피드 변화를 주면 타자의 중심을 무너트릴 수 있다. 타자의 스윙이 스타트된 이후 공에 변화가 생기면 맞혀도 손목으로나 툭 쳐낼 수 있을 뿐이다.' 2005년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 그리고 시범 경기를 거치며 믿음은 확신으로 변했다.

전병호는 "내게 똑바로 가는 볼은 이제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직구도 휘는 것 떨어지는 것, 다양하게 던진다. 스리볼에 몰려도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수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전병호 (제공=삼성라이온즈)

▲제구의 기본은 자신감
전병호는 제구력이 빼어난 투수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전병호가 살 수 있는 것은 낮게 제구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개 중 7개가 정확하면 특급인데 전병호는 6개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병호는 공 던지는 훈련량 자체는 많지 않다. 스프링캠프땐 1,500개에서 1,800개 사이를 던진다. 삼성 투수들의 평균(2,500개 이상)에 한참 모자라는 수치다.

지난해부터는 선발 등판 사이의 불펜 투구도 안한다. 무릎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많이 던지지 않고 제구를 잡는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전병호는 살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참때는 캠프때 4,500개 이상을 던지기도 했다. 결국 많이 던지며 자신의 폼과 밸런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젊고 힘 있는 투수라면 많은 공을 던지며 감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전병호는 중학교(영남중)때부터 지금까지 폼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가볍게 공을 올려놓고 때리는 스타일이 20년 가까이 한결같았다. 이젠 정말 몸에 익고도 남는 수준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정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자신감'이다. 전병호는 "자신감이 제구의 제1 덕목이다. 훈련때 아무리 잘 던져도 실전에서 자신을 믿지 못하면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없다. 나도 몸쪽 승부를 하려면 걱정될 때가 있다. '공에 힘도 없는데 몰리면 어쩌지...' 그럴때 던지면 무조건 맞는다. 그렇다고 몸쪽을 피하면 결국 다른쪽(바깥쪽 싱커)도 죽는다. 결국 살아남으려면 나를 믿고 자신 있게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번의 변신
전병호의 2008시즌 스타트는 썩 좋지 못하다. 4경기에 나와 1승2패 방어율 6.61. 다른 선수 같으면 2군 이야기가 나올 수준이다. 그러나 선 감독은 몇차례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전병호를 믿기 때문이다.

전병호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또 한번 '변화'를 얘기했다.

"최근 몇년간을 비슷한 패턴으로 가다보니 타자들도 내 스타일을 완전히 파악한 것 같다. 이젠 볼 배합이나 로케이션에 변화를 줄 때가 됐다. 싱커에 의존하던 방식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병호 투구의 가장 일반적인 패턴은 대각선 승부다. 우타자의 경우 몸쪽에 바짝 붙는 직구를 보여주고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로 타이밍을 뺏는 식이다. 이젠 이런 큰 틀부터 다시 수정을 하겠다는 뜻이다.

▲후배들에게
전병호는 인터뷰 도중 여러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우리 팀 후배들은 정말 좋은 공을 던진다. 여기에 완급조절까지 하게 되면 더욱 무시무시한 투수가 될 것이다."

투수 왕국 삼성엔 힘 좋고 오래가는 파이어 볼러들이 많다. 현재 그들의 목표 역시 옛 전병호의 그것과 비슷하다. '더 빠르게 공을 던지고 싶다.'

전병호는 이에 대해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 옆에서 얘기해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스스로 느끼는 날이 올 것"이라며 "한화 류현진이 정말 무서운 것이 바로 완급조절이다. 빠른 공을 던지면서도 체인지업으로 '툭'하고 타이밍을 뺏는다. 타자들이 버거울 수 밖에 없다. 힘으로 누를 수 있을 땐 상관 없다. 하지만 그건 언젠가 한계가 온다. 그 전에 준비할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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