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우의 축구&] 심판들이여, 증오를 두려워 말라

  • 등록 2007-05-17 오후 8:26:37

    수정 2007-05-17 오후 9:37:16

▲ 16일 오후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삼성 하우젠컵 2007 A조 인천 유나이티드와 울산 현대의 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이 골문 앞에서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뉴시스]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축구에서 유일하게 이의 없이 만장일치로 받아들이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주심을 증오 한다는 사실이다.”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저서 ‘축구 , 그 빛과 그림자’에서 주심에 대해 한 말이다. 축구 주심, 심판의 어려움을 반어적으로 에누리없이 보여준다. 냉소적인 시각도 깔려 있다. 그만큼 심판은 고독한 것이다.

2007 K리그에서 다시 심판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경기 후 최강희 전북 감독 등 국내 지도자는 물론 세뇰 귀네슈 FC 서울 감독 등 외국인 감독들까지 판정에 볼멘소리를 내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경기 중 서포터스들의 야유가 높아짐은 물론이다. 대부분 편파 판정, 매끄럽지 못한 경기 운영에 대한 불만들이다.

심판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는 기미를 보이자 프로축구 연맹은 최근 심판부위원장이 출입 기자들에게 향후 개선 방안을 밝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이재성 심판부위원장은 “판정에 대한 불신의 벽을 낮추기 위해 판정 가이드라인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보다 현격하게 많은 K리그의 파울 수를 예로 들며 “원활한 진행을 위해 경기당 파울 수도 줄이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실 심판 판정에 관한 논란은 진부한 주제다. 매 시즌, 매 대회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 세계 최고의 심판만 정선해 진행하는 월드컵에서도 심판의 오심 논란은 단골 메뉴다. 오죽했으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판정 때문에 심판을 징계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까.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감독들이 판정에 불만을 갖는 일은 다반사다. 첼시의 조제 무리뉴 감독은 페널티킥 판정을 두고 ‘음모론’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켰다. 리버풀의 라파엘 베니테 즈 감독은 지난 5일 풀럼에 0-1로 패한 뒤 "주심을 20명으로 늘리고, 카메라를 2000대쯤 세우고 각종 전자장치를 설치해봐야, 보지 않으려 한다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면서 짜증을 부렸다.

그렇다면 프리미어리그나 K- 리그나 매 한가지라고 마냥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가. 문제는 심판 판정 논란이 비슷할지는 몰라도 그 논의의 질이 다르고 수준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경기당 파울수가 프리미어리그는 26.04개인 반면, K리그는 40개가 넘는다고 했다.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는 프리미어리그 경기의 원동력 중 하나는 휘슬을 부는 것을 가급적 자제하고 경기 흐름에 맡겨놓는 심판의 원활한 경기 운영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심판위원회의 방침 때문인지 최근 K리그를 보면 휘슬 소리는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러나 파울이 분명해 보이고, 심지어 옐로카드감인데도 휘슬이 울리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더 큰 문제다. 이는 본질은 놔두고 현상만 따르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파울수가 줄어드는 게 반칙을 눈 감아 준 결과라면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더욱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자. 오히려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자. 경고성 반칙이 나오면 어김없이 옐로카드를, 퇴장감이면 레드카드를 거침없이 꺼내 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뭐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면 판정 가이드 라인 등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일본 J리그에서 활약하는 국가대표 김정우(나고야 그램퍼스)는 “J리그 심판 판정은 엄격하다. 봐 주기가 없다. 이런 심판들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한번 경고를 받으면 남은 시간 정말 조심하게 된다. 자연스레 선수들은 반칙을 적게 하면서 빠른 경기 흐름과 득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K리그 심판과 TV를 통해 보는 프리미어리그 심판의 차이점 또한 엄격함이다.

무엇보다 봐주기 또는 보상성 판정을 뿌리 뽑아야 한다. 바로 이 팀에 이렇게 했으니 저 팀에 저렇게 해야지, 또는 한번 놓쳤으니 다음에는 이를 갚아 줘야지 하는 성격의 판정들이 그것이다. 팀과 팬들 모두에게 욕을 먹지 말자는 무소신 판정의 부산물들이다. 심판 스스로 소신과 엄격한 잣대를 포기했을 때 이미 그는 판관이 아니다.

판정을 내린 뒤 선수에게 이해를 구하려는 듯한 심판의 모습도 꼴불견이다. 선수가 거칠게 항의하면 “이해하고 넘어가줘”라는 듯한 표정이나 제스처가 그렇다. 선수의 눈치를 살피며 슬몃 슬몃 웃는 모습도 비친다. 격앙된 분위기를 풀어주고, 쓸데없이 나쁜 관계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인간적인 면을 이해 할 수도 있으나 원칙에 따라 판정을 내렸다면 구태여 선수들에게까지 이해와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

갈레아노는 이렇게도 비틀었다. “만일 주심이 없었다면 팬들은 모든 실수에 대한 알리바이와 모든 불운에 대해 머리를 짜내 고안해내고 설명해야 할 것이다. 심판을 많이 증오하면 할수록 그만큼 그가 더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심판은 어차피 감독, 선수, 팬들의 증오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피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한다. 모두에게 이해받으려 하지 말고 ‘그라운드의 포청천’답게 스스로 엄격해져라. 그래야 증오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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