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한국야구 다시 보기 8] 최희섭의 마지막 계약

  • 등록 2008-02-13 오전 10:51:34

    수정 2008-02-13 오전 10:59:18


[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지난 2005년 12월20일(이하 미국시간). LA 다저스에서 ‘방출되느냐, 마느냐’ 설왕설래했던 최희섭은 우여곡절 끝에 재계약 했습니다. 연봉도 35만1500 달러에서 106%나 오른 72만5천 달러로 예상 보다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봉은 유감스럽게도 보장된 게 아니었습니다. 다저스가 최희섭을 방출시키면 대부분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메이저리그 개막 2주일 전에 방출되면 17만8278 달러, 그 이전엔 11만8852 달러밖에 못받는 논개런티드(non-guaranteed) 계약이었습니다.

당시 최희섭의 에이전트는 "논개런티드 계약은 자유계약선수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6년차 미만 선수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계약”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최희섭의 논개런티드 계약은 메이저리그 노사 단체 협약에 규정된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이 문제의 소지가 다분했던 것은, 다저스가 최희섭을 놓고 일관되게 견지해온 흐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저스는 당시 이미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1루수로 영입하고, 후반기엔 2루수 제프 켄트도 1루로 전업시킨다는 계획을 천명했습니다. 더욱 다저스는 2005시즌 내내 최희섭과 플래툰시스템을 이뤘던 올메도 사엔스와도 2년 계약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 최희섭은 주전으로 설 자리도 없거니와 보험용 백업 요원도 될 수 없는 사면초가였습니다.

그런 절박한 현실은 다저스와의 협상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희섭의 트레이드를 줄기차게 추진해온 다저스는 마땅한 팀이 나타나지 않자 구단이 재계약 포기 대상자를 발표하는 마감일이 되어서야 계약을 했습니다. 와중에 (메이저-마이너리그에 소속되느냐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스플릿 계약을 할 것이냐, 그래도 논개런티드 계약을 할 것이냐 두가지 안을 최희섭측에 제시한 뒤 계약을 마쳤습니다.

다저스의 속내는 뻔했습니다. 일단 최희섭과의 재계약으로 시간을 벌면서, 연봉도 높여 가치를 올려놓은 뒤 중단된 트레이드 작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논개런티드 계약 조항을 십분활용해 방출시킨다는 의도였습니다.

이것이 다저스가 금전적 손해를 최대한 줄이면서 이중삼중의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놓은 최희섭 논개런티드 계약의 '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희섭의 에이전트는 다소 과민 반응을 보인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미국 언론이 논개런티드 계약을 사실상 스플릿 계약이라고 처음 알렸을 때 “악의적인 보도”라며 한국 언론을 상대로 정정 노력을 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계약의 내용은 사실상 보장받지도 못한 스플릿 계약이었는데 106% 인상이라는 수치를 앞세워 공치사에 바빴던 것입니다. 어찌됐든 좋은 계약을 이끌어냈는데 가려지는 게 에이전트로서 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몇 달 후 최희섭은 다저스의 시나리오대로 됐습니다. 다저스는 3월24일 최희섭을 웨이버시켰고 보스턴 레드삭스가 잡았습니다. 다행히 다저스가 개막 11일 전에 방출해 연봉은 깎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희섭은 얼마 후 햄스트링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이후 다시는 빅리그로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습니다. 363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4푼, 40홈런, 120타점. 그것이 메이저리그 5년 통산 최희섭의 성적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일찌감치 다저스로부터 공을 넘겨받았던 최희섭의 에이전트였습니다. 촤희섭은 2005년 바로 그 해 메이저리그서도 몇 차례 없었던 3연타석 홈런 등 데뷔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막 꽃봉우리를 틔우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터전을 찾지 못하고, 부상마저 당한 뒤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면서 메이저리그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최희섭의 불운이기도 하면서 에이전트의 한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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