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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2007 한국 프로야구의 화두 중 하나는 단연 발야구다. 페넌트레이스 1위와 2위를 차지한 SK와 두산이 나란히 빠른 발을 무기로 좋은 결실을 맺으며 뛰는 야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발 야구가 빠르기만 가지고 완성된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SK는 1번부터 9번까지 모든 타자들에게 주자로서의 노력도 요구하고 있다. 두산 김동주 최준석 등 0.1톤 거구들의 질주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진정한 발 야구의 완성은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상대의 빈틈을 제대로 노리기만 한다면 빠르지 않은 발로도 멋진 주루플레이를 성공시킬 수 있다.
한화는 1회초 2사 1,3루의 위기를 넘긴 뒤 1회말 곧바로 찬스를 잡았다. 1사 후 김민재와 크루즈의 연속 안타로 1사 1,3루.
여기서 4번 김태균의 좌익수 플라이가 나왔다. 삼성 좌익수 양준혁은 수비가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 순간만은 달랐다. 얕은 플라이를 힘껏 달려나와 잡아낸 뒤 빠르게 홈으로 공을 뿌렸다. 3루 주자 김민재가 홈을 파고드는 속도에 결코 뒤지지 않는 스피드였다. 홈에서의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이때 돌발 변수가 나왔다. 1루주자 크루즈가 2루까지 내달렸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삼성 3루수 김재걸은 양준혁의 송구를 커트해야 했고 김민재는 안전하고 홈을 밟았다. 크루즈까지 2루에서 세이프돼 효과는 200%였다.
크루즈는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다. 게다가 아킬레스건 부상까지 안고 있어 뛰는 것이 여의치 않다. 다만 이를 알고 있을 삼성 수비수들의 빈틈을 노릴 수 있는 센스가 있었던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못하다고,또 지레 발이 느리다고 포기하고 있었다면 성공시킬 수 없는 진루였다. 2사 후였지만 삼성 선발 매존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던 점, 또 각 큰 변화구를 던지는 것을 어느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 있는 발야구였다.
결국 다음 타자 김태완은 매존의 덜 떨어진 변화구를 받아쳐 좌전 안타를 만들어냈고 크루즈는 여유있게 홈을 밟을 수 있었다.
반대로 아쉬움이 남는 장면도 있었다. 한화 고동진은 2회 1사 후 우전안타로 출루한 뒤 도루를 성공시키며 스스로 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쯤되면 훌륭한 발야구 플레이를 펼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다음 타자 연경흠은 중견수 쪽으로 큼지막한 플라이를 쳤다. 삼성 중견수 김창희는 펜스 앞까지 달려간 뒤에야 공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탄력 때문에 결국 펜스를 짚고서야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역시 2사 후였지만 당시 마운드에 서 있던 안지만은 이번 준플레이오프에 처음 마운드에 오른 탓인지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었다.
고동진이 3루에 있었다고해도 득점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갈 수 있는 베이스를 놓친 다는 것은 단기전서 예상보다 큰 아픔이 될 수 있다.
물론 한화는 이날 승리를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출혈이 너무 컸다. 1차전 선발이었던 류현진이 6회부터 1사부터 마운드에 올라 9회 2사까지 무려 3.1이닝을 던져야 했다.
만에 하나 2회에 한화가 점수를 냈다면,그래서 점수차가 조금이라도 더 벌어졌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주(注) : 야구판에서 결과론과 가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결과만 놓고 따져보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은 야구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두 감독이 되어 경기를 복기(復棋) 할 수 있는 것은 야구의 숨은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치열한 승부 뒤에 남는 여운을 즐길 수 있는 장이 됐으면 합니다.
만약애(晩略哀)는 '뒤늦게 둘러보며 느낀 슬픔'이란 뜻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본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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