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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당시 프로배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전·현직 선수 15명이 포함된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남자부 신생팀이었던 드림식스 배구단은 해체 직전에서 연맹의 지원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했다. 회사로 따지면 전형적인 부실기업이었다.
그리고 구자준 총재 부임 후 약 4년이 지났다. 프로배구는 위기의 시간을 훌륭히 이겨냈다. 구자준 총재는 최근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4년에 대해 “참으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며 껄껄 웃었다.
구자준 총재는 “처음에는 연맹의 재정적 안정이 중요했다. 당시 우리카드 전신인 드림식스를 지원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연맹에 재정적 문제가 많았다”며 “여러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목표를 갖고 해결해나갔다. 조직 내부에서 고민을 많이 했고 외부로부터 컨설팅도 받았다. 그런 노력이 빛을 발하면서 시청률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팬들의 신뢰를 되찾았다. 여기에 선수들도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배구, 시청률·화제성↑… ‘제2의 전성기’ 활짝
프로배구는 최근 들어선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고 있다. 작년 12월 KBSN과 2020-2021시즌까지 5시즌 간 총액 200억원에 이르는 중계방송권 계약을 맺었다. 지난 12일에는 NH농협과 10년 연속 타이틀스폰서 조인식을 갖기도 했다.
프로배구가 이같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데는 선수들과 배구인의 노력과 더불어 구자준 총재의 리더십이 큰 몫을 자리하고 있다.
구자준 총재는 ‘프로배구의 인기가 프로농구를 제쳤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과찬의 말씀이다. 우리보다 8년이나 선배인 프로농구를 제쳤다고 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나마 TV 시청률이 앞서 있어서 좋은 평가들을 해주시는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이어 “KOVO는 프로배구 원년부터 선배 종목들을 벤치마킹해서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특히 주관방송사 개념을 도입하여 12시즌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로인해 중계채널의 안정화와 경기 시간을 고정할 수 있었고 이것이 V리그 인기를 높이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 같다. 구단들도 지역밀착형 마케팅을 통해 연고지 개념을 정착시킨 것도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구자준 총재는 “트라이아웃으로 선수를 뽑게 된 만큼 외국인선수의 실력 편차라 줄어들었다. 그 어느 시즌보다 국내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이 필요한 시즌이 될 것 같다”며 “포지션 변화, 다양한 전술 등 더 박진감 넘치고 재밌는 경기가 전개될 것이다. 더이상 국내 선수들은 외국인선수들의 도우미가 아니다. 리그를 이끌어 가는 주체가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스포츠 경기 뛰어넘어 새로운 컨텐츠로 도약 기대”
구자준 총재는 단순히 스포츠 경기를 넘어 새로운 컨텐츠로서 프로배구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방송 등을 통한 컨텐츠 제작이다.
그는 “경기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TV 중계방송을 기반으로 프로배구 컨텐츠의 고급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TV 주간 매거진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인포그래픽, 포스트 등 신선한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해서 젊은 세대들이 보다 더 프로배구를 즐길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으로 구자준 총재는 한국 배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선 좁은 국내를 벗어나 국제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시즌 동안 중국, 일본 팀과의 교류전 대회를 치르는 등 프로배구의 국제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구자준 총재는 “지난 여름 개최된 한·중·일 대회를 통해 한국, 중국, 일본의 배구가 꾸준히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중국배구가 최근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과 꾸준한 교류를 통해 장기적으로 동북아 배구발전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중·일 대회를 정례화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계속 노력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구자준 총재의 가장 업적을 꼽는다면 프로배구를 승부조작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다른 프로스포츠들이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프로배구가 승부조작의 안전지대가 된 것 같다는 질문을 던지자 구자준 총재는 고개를 저었다. 승부조작 문제에 대해선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5가지 목표 정해 앞으로 10년 준비해가겠다”
구자준 총재가 부임하자마자 가장 신경 썼던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신생팀 창단이었다. 부임 당시 남자부 드림식스는 모기업의 운영포기 선언으로 해체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구자준 총재를 비롯해 KOVO의 노력 덕분에 우리카드라는 새 주인을 맞이했다. 뒤이어 남자부 제7구단 OK저축은행까지 창단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현재는 남자부 7개 팀, 여자부 6개 팀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운영하는 중이다,
구자준 총재는 “여자부의 경우 초·중·고 유소년 배구 인프라가 상당히 열악해 남자부에 비해 선수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여자부는 창단보다는 유소년 배구 인프라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남자부의 경우 1개 팀이 더 창단돼 8개 팀으로 운영된다면 경기일정, 연고지 광역화 등 더욱 탄탄한 V리그를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직은 구체화 된 창단 계획은 없지만 일부 기업에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꼭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KOVO는 프로배구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장기적인 미래도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파워풀 콤비네이션 25(POWERFUL COMBINATION 25)’라는 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프로배구를 단순히 ‘그들만의 경기’가 아닌 온 국민이 관심 갖고 주목할 컨텐츠를 만들겠다는 것이 구자준 총재의 당찬 포부다.
그는 “KOVO는 최근 ‘높은 이상을 향한 끊임없는 신뢰와 헌신으로 감동적인 에너지를 함께 나누며 미래를 창조한다’는 미션을 세웠다. 겨울 스포츠의 꽃을 피운다는 ‘설매화(雪梅花)’전략을 수립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스포츠, 새롭고 매력적인 엔터테인먼트로 발돋움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며 “남·녀 프로구단 증가, 글로벌 랭킹 상승, 유소년 선수 증가, 관중 수 증가, 매출액 증가 등 5가지 항목의 목표를 정하고 앞으로 10년을 차근차근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자준 한국배구연맹(KOVO)총재는...1950년 3월 5일 경남 진양에서 태어나 한양대 전자공학과와 미국 미주리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LG정밀 부사장을 시작으로 럭키생명 대표이사, LG화재 대표이사, LIG손해보험 대표이사 및 회장, LIG손해보험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지난 2012년 11월부터 한국배구연맹 총재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