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의 커피 이야기] 한국에서 커피가 차지하는 존재적 의미

  • 등록 2015-06-08 오전 9:09:40

    수정 2015-06-08 오전 9:09:40

김정욱의 커피 이야기
[이데일리 스타in 연예팀] 간혹 젊은 친구들 중에는 커피가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서양인이 평가하는 커피라면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재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 중에는 미국인들도 있다. 이것은 누가 우월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제대로 된 학습을 했느냐의 문제다.

지금 내게 커피를 배우고 있는 미국인 수강생은 한국의 모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꿈은 자신의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시골의 한적한 곳에 커피 랩 투어 코스를 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신뢰하여 내게 커피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와 실증적 실습만을 신뢰하여 학습할 뿐이다.

간혹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오랜 시간 커피 관련 학습을 했음에도 외국에서 유명한 테이스터(taster)나 커퍼(cupper)들과 커핑할 때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경우들이 있는데 제대로 된 교육적 경험이 이루어졌고 기준이 잡혀 있다면 전혀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훌륭한 테이스터들은 남의 의견들을 매우 잘 존중해 준다.

내가 만나 함께 커핑했던 케네스 데이비즈(Kenneth Davids) 교수나 션 스테이만(Shawn Steiman) 박사 등을 보면 어떤 객관적 공유점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상대의견에 매우 잘 경청하며 그들의 의견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한다. 다양한 해외 커피 심사 과정에서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때 보면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를 준 의견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자가 느낀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한다. 물론 객관적 공유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커피에 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시쳇말로 음식점을 할 때 가장 위험한 요소가 ‘내가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커피의 맛과 향을 구별하는 교육들은 기존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부분들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맹이 아니라면 반복 훈련을 통해 교육적인 부분으로 얼마든지 기준들을 잡아낼 수 있다. 일정 교육을 받았다면 그다음부터는 자신의 ‘주관적 행위’가 ‘간주관적(intersubjectivity) 행위’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아니면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통해 자신의 기준을 잡아나가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커피를 조금 배웠거나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 중에는 ‘제대로 커피 맛도 모르면서’라며 타인을 은근히 무시할 때가 있다. 더 심각한 경우는 본인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에 대해 ‘커피 맛도 모르면서’라는 마음을 가고 있을 때다.

훌륭한 커피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절대적 미감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느끼고 이해하고 있는 부분을 서로 공유하고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더 많이 경험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더 느끼기 때문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좋은 생두를 찾기 위해 남미의 어느 산지를 찾아갔을 때 일이다. 그곳에서 한 커피 농가를 만났는데 가족 모두가 커피 농사에 매달려 일하고 있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그들의 눈은 복잡한 이해가 얽힌 도시인들과 달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중,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이 전부였다. 가족 중 아버지가 생두를 사기 위해 온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 커피인지 물어보았다. 그의 질문에 생두를 구입하러 온 다른 무리 중 한 사람이 “너희가 피와 땀을 흘려 정성스럽게 지으면 그게 좋은 커피야”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서로를 처다 보며 약간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 중 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농가 사람들이 자신이 짓고 있는 커피 농사를 위해 피와 땀을 흐리지 않는 사람은 없다.”며 어리지만 매우 단호한 어투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조심스러워하며 말을 덧붙였다. “나머지는 자연과 신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지요.” 순간 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그 무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내가 볼 때 그들이 원했던 질문의 의도는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에게 맛있는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농사 비법을 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커피 트렌드(trend)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가령 물이 많은 국가에서 주로 이용되었던 워시드(washed) 생두 가공방식이 내츄럴(nature) 방식이나 세미 내츄럴을 찾는 유통업자들이 늘어나면서 그쪽으로 가공방식을 달리하는 경우들이 생겨나고 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고 말이다.

사실 한국 커피 시장은 고도 경제성장 시기만큼이나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그만큼 한국의 커피 시장에 대해 커피 생산국들은 많이 주목하고 있는 실정이며, 더욱이 가장 큰 소비국이 될 수 있는 중국시장에 대해 교두보 역할을 한국시장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중요한 이때에 한국 커피 시장은 더욱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커피는 ‘좋은 커피’라는 이데아적 요소를 분명 가지고 있지만 자라 온 환경이나 관습, 개인적 기억과 경험이라는 주관적 요소 때문에 ‘좋은 커피’를 찾아가는 길은 ‘간주관적’ 행위에 의해서 얻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파악하고 존중해야 좋은 커피를 찾아낼 수 있다, 결국 좋은 커피란 혼자서 찾아낼 수 없는 일이다. 때문에 매일 마시는 커피는 매일 다르게 느껴진다. 한 잔의 커피를 통해 커피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누려도 좋지만 그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시장에 대한 장점은 더욱 발전하고 단점은 개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김정욱 現 딸깍발이 코퍼레이션 대표. 現 커피비평가협회 한국본부장.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베스트 컵 콘테스트 심사위원(2015 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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