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재 "박수칠 때 떠나게 돼 기쁘다"

16년간의 대표팀 생활 '아듀'
  • 등록 2010-08-06 오전 10:31:43

    수정 2010-08-06 오전 10:35:15

▲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베테랑 골키퍼 이운재(사진=김정욱 기자)

[대한축구협회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한국축구대표팀의 베테랑 골키퍼 이운재가 대표팀 은퇴와 함께 소속팀(수원삼성)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운재는 6일 오전9시30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국가대표팀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심경을 담담하게 밝혔다.

이 자리에서 이운재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간 팬들의 성원과 관심 덕분에 행복하게 뛸 수 있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이제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 할 때라는 결심이 섰으며, 마음 편히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운재는 지난 1994년 3월 미국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처음 A매치에 출장했으며, 이후 131경기에 출장해 113실점을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1994미국월드컵을 시작으로 2002한일월드컵, 2006독일월드컵, 2010남아공월드컵까지 4차례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 영광도 누렸다.

가벼운 캐주얼 복장으로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이운재는 "대표팀이 내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은퇴를 결심한 것"이라면서 "대표팀에 훌륭한 후배들이 많은 만큼, 이제는 자리를 물려주고 내 갈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 생활은 끝마치게 됐지만, K리그 무대에서 프로로서 멋진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운재는 지난 2007년 아시안컵 기간 중 불거진 음주파문으로 인해 선수자격정지를 당한 순간을 '가장 힘든 기억'으로 꼽았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나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지만, 팬들에게 실망을 끼쳤다는 점이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밝힌 그는 "이후 열심히 훈련해 좋은 결과가 나왔고, 열 가지 잘못 중 한 두 가지 정도는 갚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남은 기간 동안 나머지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들려줬다.

"나를 대상으로 골을 넣는 선수는 모두 다 싫었다"며 활짝 웃어보인 이운재는 "프로무대에서 조금 더 뛴 뒤 본격적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부를 더 해 제자들에게 선진축구를 전수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도 밝혔다.

이운재는 오는 11일 오후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와의 A매치 평가전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을 예정이며, 당분간 소속팀 수원 경기를 통해 K리그 무대에 전념한다.

다음은 이운재의 일문일답.

-은퇴 시점을 나이지리아전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
▲그동안 남아공월드컵이 마지막 대표선수 생활이 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가능한 한 빨리 태극마크를 반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A매치 131경기에 출전했는데, 최다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었나.
▲물론 더 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팬들에게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의 여부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숫자에 연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대표선수로 활약하며 얻을 수 있었던 가장 값진 경험은 무엇인가.
▲이운재라는 사람의 삶일 것이다. 이제껏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축구는 인생의 절반이지만, 대표팀은 축구의 절반이다. 아쉬웠던 것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과 잊고 싶었던 순간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나 2002년 당시가 아닐까 한다. 4강의 주역이 되어서라기보다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 선택을 받았던 것이 너무나 기뻤다. 잊고 싶은 순간은 역시나 대표선수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음주파문)을 저지른 것이다. 후배들은 나처럼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벤치를 지켰다. 선수로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은퇴하고 싶었을텐데.
▲남아공에서 넘버원으로 선택받기 위해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미련은 없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라'는 옛 말이 있는데, 지금이 그 시기라고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방이 있는가.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이나 북한과의 경기에서 정대세(보쿰)의 슈팅을 막았던 것 등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대표팀에서는 물러나지만 수원에서는 여전히 활약할텐데, 언제까지 뛸 것인가
▲선수생활을 조금 더 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올해 계약이 끝나는 만큼 수원 구단 관계자들과 좀 더 협의해야할 것 같다. 지금까지 수원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들도 있었던 만큼 마지막까지 노력하겠다.

-2007년 음주파문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고 했는데, 당시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적잖은 심적 부담을 겪었다. 팬들이 나에게 실망을 했다는 사실이 가장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더 많이 훈련했다. 다행히 이후에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열 가지 잘못 중 한 두 가지 정도는 갚았다고 생각한다. 남은 기간 동안 나머지 빚을 갚도록 노력하겠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이후에도 여전히 축구계에 몸 담을테니 더 많이 노력하겠다.

-130경기가 넘는 A매치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상대는
▲나를 대상으로 골 넣은 선수들은 모두 다 싫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아무리 잘해도 골을 허용하면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향후 진로는. 골키퍼 출신 감독도 꽤 많은데,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일단 프로팀에서 좀 더 뛸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이후에 나를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코칭스태프로 나설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것이다. 분명한 것은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 상황에 맞는 훈련 방법을 개발하고싶고, 이런 노력들이 제자들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뒤를 이어 대표팀 골문을 지킬 선수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대표팀 뿐만 아니라 모든 골키퍼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항상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선수들이 얼마나 땀을 흘리느냐에 따라 골키퍼라는 자리의 주인이 결정된다. 정성룡 선수가 남아공월드컵 본선에서 활약했지만, 여기서 자만한다면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 지금까지 흘린 만큼의 땀을 더 흘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운동한다면 좋은 골키퍼 후배들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체중관리는 잘 못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10여년 전에도 들어왔던 이야기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팬들이 그런 지적을 하시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런 단점이 있었기에 내가 선수 생활을 더 오래할 수 있었고, 악착같이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도 자신들에 대해 여러가지 설왕설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부분에 개의치 않고 노력해주길 바란다. 대표팀의 골키퍼라는 자리는 관심도 책임감도 많은 자리다.
▲ 취재진 앞에서 인사하는 이운재(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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