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형, "전자음악 택한 이유? 베이시스의 늙은 오빠로 남긴 싫었다"

  • 등록 2008-04-14 오전 11:42:05

    수정 2008-04-16 오전 10:14:47

▲ 6년만에 솔로 3집 '포 자클린'으로 돌아온 가수 정재형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빠른 비트의 전자음악에 여유로운 보컬과 사소한 일상을 담은 소박한 가사, 이런 극과 극의 만남이 이번 앨범의 특징이죠”

그룹 베이시스 해체 이후 1999년 홀연 파리로 영화 음악과 작곡 등을 공부하기 유학을 떠난 가수 정재형(36). 그가 6년만에 ‘포 자클린’ (for Jacqueline)이란 솔로 3집을 들고 돌아왔다. 그것도 베이시스 시절 들려준 ‘내가 날 버린 이유’, ‘작별의식’ 같은 비장미 넘치는 발라드가 아닌 전자음악으로 말이다.

그렇다고 정재형이 지난 2002년 발매한 솔로 2집 이후 음악 작업을 중단했던 것은 아니다.
정재형은 그 동안 영화 ‘오로라 공주’, ‘Mr. 로빈 꼬시기’ 등의 O.S.T 작업은 물론, 2005년에는 클래식 연주가와 앙상블을 구성해 클래식 앨범도 한장 냈다.

인터뷰를 위해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정재형은 그가 들고 온 새 음악만큼 세련되고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였다. 검은 가죽 바지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나온 정재형은 원색의 머플러로 무채색의 무거움을 한번에 덜어낼 줄 아는 패셔니스타였고, 굵은 웨이브의 조금은 어수선한 단발머리는 파리지앵의 자연스러움이 한껏 묻어났다.

이제 서른 여섯,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되돌아 온 “아직은 좀 더 음악 작업에 열중하며 내 시간을 좀더 갖고 싶다”는 정재형의 말에는 데뷔 13년차 뮤지션이라고는 믿기 힘든 음악적 열정에 대한 날섬이 느껴지기도 했다. 
 
▲ 6년만에 솔로 3집 앨범을 들고 돌아 온 가수 정재형

 다음은 정재형과 새 앨범에 대해 나눈 일문 일답이다.

▲3집 앨범 ‘포 자클린’(for Jacqueline)에서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닉 앨범을 들고 나왔다. 정재형을 발라드 가수로 기억하는 팬들에겐 낯설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미니멀한 전자음악들에 빠져있다. 한국에서는 인디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듀오 페퍼톤즈의 음악도 즐겨 듣고 있다. 이번 나의 전자음악이 낯선 분들도 있겠지만 지난 솔로 2집과 그간 작업한 영화음악들을 꾸준히 들어왔던 분이라며 나의 이런 음악적 변화를 조금씩 감지하고 계신 분들도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베이시스 때 했던 발라드 음악에 대한 미련은 없나? 그 향수를 바탕으로 좀 더 패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는 새 앨범에 과거의 나가 아닌 지금의 나를 담고 싶었다. 지금 나의 음악적 토대와 배경은 이미 베이시스 시절에 했던 음악과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음반의 인기 등 상업적 목적을 위해 베이시스류의 발라드 음악을 들고 나오고 싶진 않았다. 과거의 늙은 오빠로 돌아오고 싶진 않았다랄까?(웃음) 새로운 형식의 음반으로 팬들 앞에 서고 싶었다.

▲이번 앨범은 파리에서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좀 경쾌하고 화려할 것 같은데 조금 우울한 면이 없지 않다.

-한 달 정도의 관광을 목적으로 들른 사람에게 프랑스 파리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짧은 기간 동안 멋진 곳만 보고 맛있는 것만 먹고 돌아가니까. 하지만 난 유학생 신분으로 9년여를 파리에서 관광이 아닌 생활을 해야했다. 관광객들이 좋은 음식만 먹는다면 남 좀 더 저렴한 식단을 강구해야 했고.(웃음) 그래서 자연스레 작사를 할 때도 파리의 화려한 공간이 아닌 파리의 평범한 유학생으로 나의 사소한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게 됐다.

▲ 파리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다른 사람이 생각하 듯 화려하지만은 않았다. 화려함은 한 때였고 파리 고등 사범학교에서 음악 공부를 했는데 너무 재능있는 친구들이 많아 내 재능에 회의가 들던 때가 많았고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 앨범 제목이 ‘포 자클린’이다. 7번 트랙에는 ‘자클린’이란 노래도 있고. 혹 파리에서 사귄 누군가를 위한 앨범은 아닌가?

-자클린은 그냥 한국의 영희처럼 누군가를 지칭하는 일반 대명사다.(웃음) 자클린이란 노래는 내가 프랑스 중심가의 한 아파트에서 살 때 윗 층에 살던 한 여자를 ‘자클린’이라 비유해 쓴 곡이다. 그 아파트는 파리의 젊은 예술가들이 주로 살았던 곳인데 아파트가 오래돼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다니는 소리가 다들릴 정도로 다른 집에서 뭐하는지가 다 들리는 곳이었다. 그런데 내 윗층 여자는 새벽이 되도 잠을 잘 들지 못했고 언젠가 한번 그의 집에 올라가보기도 했는데 너무 외로워 보였다. 이는 파리에서의 조금은 우울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온 나의 궤적을 대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자클린을 제목으로 넣었다.

▲ 그럼 지난 9년간 파리에서 사귄 이성은 없나?

-없다고 할 수고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웃음). 사귄 적은 있다. 얼마 전 결별해 지금 사귀고 있는 친구는 없고.

▲ ‘지붕 위의 고양이’란 곡의 피처링을 모델 장윤주씨가 했는데?

-장윤주와는 7~8년전부터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음악하는 사람들 술자리에 참석해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다. 자기가 만든 데모 테이프도 있고 곡도 쓰고 작사도 하고. 이번 곡을 쓰면서 문득 윤주의 목소리가 떠올랐고 같이 녹음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성사된 것이다.

▲ 대중음악 가수이기도 하지만 영화 음악을 하기도 했고, 클래식 음반을 내기도 했다. 각 음악 작업엔 어떤 다른 매력이 있나?

-클래식은 몇 개월 동안 작업하는 논문 같은 것이라면 영화 음악은 영화를 보고 음악에 대한 감상문을 음표로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요는 소설쓰는 느낌이랄까?

▲ 이렇게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 본인의 음악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이런 다양한 음악 장르의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한동안 힘들었던 적도 있다. 한동안 클래식 공부와 영화 음악을 하다보니 가요를 작곡할 수가 없었다. 코드를 짚으면 전혀 가요스럽지 않은 코드만 나오고. 그래서 솔로 앨범 준비를 시작한 한 동안은 공황 상태였다. 이런 고민들이 솔로 앨범이 늦게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 그럼 어떻게 그런 위기를 극복했나?

-2004년인가? 엄정화의 8집 앨범 프로듀싱을 하면서 점점 대중음악에 대한 감이 돌아온 것 같았다. 여전히 솔로 앨범 콘셉트를 뭘로 잡아야하나 과연 솔로 앨범을 잘 낼수 있을까 고민은 계속됐지만 말이다.

▲ 요즘 김동률과 토이 등 90년대 오빠들이 다시 가요계로 돌아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당신도 어찌보면 이들과 동시대에 음악 활동을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들의 인기는 90년대 음악을 향유했던 음악팬들의 진지한 음악들에 대한 갈증과 향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수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솔직히 고마울 따름이다. 동률이와 토이가 좋은 음반을 내줘서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줬다랄까? 예전 솔로 2집을 냈을 땐 TV 출연도 안하고 마치 독립군처럼 혼자 싸우는 기분이었다. 또 최근에 클래식 (김)광진이형도 나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때를 잘 맞춰 앨범을 낸 것 같다(웃음)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6월 중순 소극장 콘서트를 계획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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