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배 부상으로 본 한심한 한국야구 인프라

  • 등록 2008-03-13 오전 10:47:52

    수정 2008-03-13 오전 10:53:18

▲ (사진제공=SK와이번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괜찮겠냐. 너 이런 잔디에 약하잖냐."
"뭐 괜찮겠죠. 두 경긴데..."

지난 8일 제주 오라 구장에서 이광길 SK 수비코치와 2루수 정경배가 수비 훈련 전에 나눈 대사다. 그리고 몇 분 뒤 정경배는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정경배는 고질적으로 다리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다. 삼성 소속이던 1999년 처음 부상을 당한 이후부터다.

원인은 단 하나다. 잔디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인조 잔디 탓이다. 대구 구장에 깔려있던 구식 인조잔디는 정경배를 '늘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로 만들어 버렸다. 정경배 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정경배는 "천연잔디나 요즘 나온 인조잔디(터프 필드)에서 뛸 땐 아프지 않다. 하지만 기존 인조잔디에서 뛰면 부담이 생겼다. 결국 제주도에서 탈이 났다"며 괴로워했다.

구식 인조잔디는 겨우 카페트 수준의 탄력만 있을 뿐이다. 날이 춥거나 건조하면 시멘트 바닥 위에서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KIA 타이거즈 홈구장인 광주 무등 경기장이 지난해 잔디 교체 공사를 하며 겨우 프로야구 8개구단 홈구장에선 구식 인조잔디가 사라졌다. 그러나 보조 구장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잔디 못지 않게 중요한 흙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까지 아마추어 선수들이 뛰었던 동대문 구장도 구식 인조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 딱딱한 바닥이 얼마나 많은 유망주들을 싹도 틔워보기 전에 좌절하게 만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동대문 구장을 헐고 새로 지어진 구의 야구장은 최신 인조잔디가 깔려 있다. 그러나 부상 위험은 여전하다. 흙의 구성 성분을 잘못 쓴데다 제대로 다져놓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구의 야구장을 다녀 온 한 야구인은 "본부석에서 보다보면 투수가 공을 던질때 발이 사라진다. 스트라이드 할때 내딛는 부분의 땅이 푹 꺼지기 때문이다. 발목은 물론 허리와 골반까지 문제가 생긴다"며 "선수들이 제대로 뛸 수가 없다. 보다 못한 프로 스카우트 들이 석회가루를 섞어 마운드를 다져 놓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항의를 해도 구장 보수 공사를 한 곳과 얘기하라는 반응만 나온다. 책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당장 어린 아이들이 다치지 말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파죽의 5연승으로 본선 티켓을 확보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야구 선진국인 이웃 일본이나 세계 최강 미국도 우리를 만만히 볼 수 없는 힘이 갖춰졌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선수들의 선전에 뿌듯해하고만 있어선 안된다. 언제까지 척박한 땅에서 꽃 피는 기적만 기다리고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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