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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신애(51)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20여년 영화인생에서 가장 귀한 인연 2명 중 한 명으로 봉준호 감독을 꼽으며 한 말이다. 곽 대표는 제작사 대표로서 자신이 메인제작으로 참여한 ‘가려진 시간’ ‘기생충’, 두 작품 만에 모든 영화인들의 꿈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품에 안았다. 곽 대표는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찾아가 ‘기생충’과 맺은 인연의 과정을 들어봤다.
“신씨네에 다닐 때 바른손(이앤에이)과 같은 건물을 사용했어요. 그 당시 바른손에 있었던 서우식 대표님에게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더니 ‘우리 회사는 생각이 없느냐’며 소개를 했어요. 그 인연으로 바른손에 다니게 됐고 ‘마더’의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던 문양권 회장과 봉감독의 신뢰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기생충’이 저한테 온 거죠. ‘기생충’은 제가 잡은 영화가 아니라 회사가 저한테 선물한 작품입니다.”
‘기생충’은 황금종려상을 받았을뿐 아니라 개봉 17일 만에 8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서도 예상을 크게 웃도는 성적을 내고 있다. ‘회사에서 인센티브는 안 주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없다”며 웃었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당시 곽 대표가 느낀 감회도 궁금했다. 수상 호명 순간을 포착한 영상에는 봉 감독과 송강호의 포옹 뒤로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물개박수’를 치는 곽 대표의 모습도 잡혔다.
“처음부터 속으로 ‘(이름이) 빨리 불리지만 마라’라고 빌었어요. 그랑프리(2등 격인 심사위원대상)가 호명될 때에는 정신이 멍해지더라고요. 끝까지 못 보고 먼저 한국에 돌아간 식구들이 있었거든요. 그랑프리 부르는 순간 (모바일 메신저) 단톡방에 ‘우리 황금종려상인가봐’라고 전했어요. 황금종려상을 받고 나서 어찌나 기쁜지 박수를 크게 쳤는데 그 모습이 영상에 잡혀서 물개 같다는 얘기를 들었죠. 하필이면 옷 색깔도 어두워서.”(웃음)
“오빠는 제 스토리를 알아서 그런지 ‘네가 20여년 간 영화에 바친 결과’라며 ‘자격이 있으니 실컷 기뻐하라’고 축하해줬고, 남편은 ‘(황금종려상이)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며 ‘분명 기쁜 일이지만 앞으로 하는 일을 함에 있어 헷갈리면 안 된다’고 마인드컨트롤 할 수 있도록 조언해줬어요. 두 사람이 제게 필요한 것들을 균형 있게 얘기해준 것 같아요.”
곽 대표가 두 감독에게서 영화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곽 대표는 1994~1997년 영화전문잡지 키노 기자를 거쳐 1997~1999년 김조광수 감독과 영화홍보대행사 ‘바른생활’의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영화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빠와 남편에 앞서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청년필름 LJ필름 신씨네 등에서 마케터와 KNJ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경험을 거쳐 2010년 바른손에 입사해 2013년 제작사 대표로 선임됐다. 곽 대표는 자신과 곽 감독이 영화 일을 하고 있는 데에는 타고난 이야기꾼인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희 남매는 아침, 저녁으로 밥상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어요. 아침에는 고사성어에 얽힌 짧은 이야기를 해주거나 저녁에는 ‘우리 고향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 거라’ 하시면서 단편 소설 분량의 제법 긴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어요. 그 덕에 남매가 이야기를 듣고 하는데 익숙한 편이에요. 저 역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듯이 풀어내곤 했죠. 그런 저를 아버지는 ‘사설쟁이’라고 불렀어요.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고요. 그렇지만 오빠가 아버지에게서 스토리텔러로서의 기질을 많이 물려받았고, 저는 창작을 못하는 대신 그 언저리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발굴하는 창작자가 있으면, 이야기가 한 편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작자도 필요하다. 곽 대표가 하는 일은 창작 이상의 중요한 일이다. 20년 전에는 지금의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성장 배경과 주변의 환경은 운명처럼 그녀를 영화인의 길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기생충’은 예술적 성취뿐 아니라 대중적 재미를 고루갖춘 작품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생충’의 성취가 창작자들에게 숨통을 터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모습이다.
“대세적 흐름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기생충’ 한 작품이 업계의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어떤 영화가 나름의 재미를 가지고 있고, 완결성이 있으면 흥행이 안 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샘플 하나는 추가되지 않았을까요. 그것만으로도 창작자들이 계속해서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영화계가 훨씬 다양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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