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와 이종범에게서 이상적인 세대교체의 길을 보다

  • 등록 2009-04-10 오전 11:09:40

    수정 2009-04-10 오전 11:18:47

▲ 사진=KIA 타이거즈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현장 감독들에게 세대교체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백이면 백 똑같은 말을 한다. "순리대로 가는게 제일 좋다."

힘이 남아 있는 노장을 억지로 옷을 벗길 필요도, 설익은 기량의 신인급 선수를 무리하게 기용할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바꿔말하면 "무리해서 추진하면 탈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매년 겨울 "좀 더 기회를 달라"는 선수의 요구와 "명예롭게 은퇴하라"는 구단의 압박이 충돌하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김재박 LG 감독은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서 "최근 몇년간 LG가 부진했던 것은 이상훈을 비롯, 유지현 서용빈 김재현 등 고참 선수들을 무리하게 은퇴 등으로 떠나보낸 것이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자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좀처럼 그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최근 KIA 타이거즈의 팀 운영은 그래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종범에 대한 활용법은 세대교체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KIA는 2008시즌이 끝난 뒤 이종범에게 은퇴를 권유했다. 투수에 비해 야수의 세대교체가 늦어지고 있는 팀 사정상 이종범이 물러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구단은 판단했다. 2008시즌서 명예회복을 한 만큼 가장 좋은 은퇴시기라는 고려도 있었다.

그러나 현역 생활에 대한 이종범의 의지가 워낙 강했다. 구단은 은퇴 시 분명한 예우를 약속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극단적인 경우 이종범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을 보게될 수도 있었다.

결국 구단이 생각을 바꿨다. 이종범에게 1년 더 뛸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만해도 구단 입장에선 이종범이 주전으로 뛸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위기가 오면 그만한 대안도 없다는 것 또한 인정했다. 

2009시즌이 다가오며 KIA 내부에선 여기 저기서 변수가 생겼다. 채종범이 시범 경기 도중 왼 무릎 연골 파열로 쓰러졌고 이용규는 홈 개막전서 오른 발목 복숭아뼈 골절상을 당했다. 둘 모두 수술을 받았다. 채종범은 사실상 시즌 아웃, 이용규는 전반기 출장이 불가능하다.

주전 외야수 후보 중 두명이 한꺼번에 빠진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한명의 후보 김원섭은 아직 페이스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이종범이 없었다면 당장 구멍을 메울 대안마저 떠오르지 않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 될 뻔한 것이다.

선수 이종범에게 특혜는 없었다. 은퇴를 했다면 오히려 극진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선수로서는 '연봉 동결'이 고작이었다. 대신 공정하게 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팀에 적지 않은 힘을 보태고 있다.

부상은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돌발 변수다. 큰 탈 없이 피해갈 수도 있지만 안되려면 줄부상이 이어지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안정적인 시즌 운영을 위해선 신인급 선수들이 기대만큼 기량이 성장하지 못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고참 선수는 예기치 않았던 위기 상황에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보험 상품이다. 십수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쌓인 노하우는 흔들림 없이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고참 선수로서의 대우를 먼저 생각한다면 구단과 감독,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모두 짐이 될 수 있다.

이종범은 개막 전부터 "1루건 외야건 내게 주어진 임무를 다 해낼 것"이라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옛 성과만 앞세워 자리 보전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그는 잠시 3루수로까지 나서기도 했다.

선수 기용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용방법이란 없다. 고참 선수들은 그 과정에서 늘 부담이 되는 존재다. 불만이 생길 경우 그 기운이 팀 전체로 퍼져나가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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