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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나 자신을 버리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원했던 방향이 이게 아닌데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배우의 꿈을 버렸죠.”
서울 모처에서 바를 운영하는 K(28, 여)씨는 한때 연기자를 꿈꿨다. 고교시절 연극부 활동을 하면서 연기에 매력을 느껴 졸업 후 극단 생활을 거쳐 스크린 진출을 노렸다.
그러나 K씨는 6년여에 걸쳐 도전했던 꿈을 5년 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자를 꿈꿨지만 자신에게 강요되는 것처럼 맞닥뜨리는 연기자와 무관한 일들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K씨는 “업계가 다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만났던 사람이 나빴던 거죠”라고 자신의 불운을 탓했다. 사실 K씨를 인터뷰 자리에 끌어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데 자칫 피해가 가면 어떡하느냐’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K씨는 ‘일부의 잘못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 전체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다른 신인들이 몇몇 나쁜 사람들 때문에 당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 동의해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연기자'라는 K씨의 꿈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스크린 진출을 앞두고서였다. K씨가 극단생활을 거쳐 영화 오디션에 합격한 뒤 ‘혼자 일하는 것은 힘들다’며 접근한 매니저 H씨를 만나면서부터다.
H씨는 K씨의 연기활동보다 다른 일에 더 신경을 썼다. K씨가 H씨와 일하며 출연한 영화는 고작 1편. 그러면서 H씨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주로 저녁에 K씨를 호텔 로비 등으로 불러냈다.
K씨는 “그러다 한번은 H씨가 누굴 소개시켜 주겠다고 불러서 나갔는데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며 입국하자마자 곧바로 호텔로 와서 피곤할 테니 방까지 가방을 옮겨주고 오라고 했어요. 그랬다가 안좋은 일을 당할 뻔했죠. 놀라서 도망쳐 나왔는데 H씨는 로비에 없더라고요”라고 밝혔다.
이어 K씨는 “H씨에게 전화를 했는데 어딘가 이동 중이라며 그런 일이 생길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처음엔 그 말을 믿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후 H씨는 아예 대놓고 K씨에게 “일주일에 한번씩만 만나면 월 300만원씩 주고 명품도 사준다는 사람이 있으니 만나라”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스폰’이다. H씨는 또 남자 손님들이 앉아있는 술자리에 합석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K씨는 거절했지만 그 자리에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여자 배우도 있었고 H씨가 그런 자리를 주선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모습도 봤다고 했다.
H씨와 헤어진 K씨는 다른 연예기획사 사람들을 만났다. 그 회사는 사람들은 좋았지만 계약조건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계약기간 5년에 수입의 20%를 제가 가져가는 조건이었어요.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에 다른 회사로 옮길 경우 위약금은 15배로 명시돼 있었고요.”
당시 K씨는 가족의 생계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저녁에는 바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바에서 경력이 쌓이자 정식 바텐더로 일해보라는 제의를 했고 K씨는 더 이상 연기자로 성공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기가 아깝다는 판단으로 꿈을 접었다.
지금은 어엿하게 바 사장님이 된 K씨. 그녀는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이제는 연기자에 대한 미련도 없고요”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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