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비지(Bizzy, 본명 박준영)가 중대한 결정을 내린 끝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섰다. 타이거JK와 윤미래가 이끄는 필굿뮤직과의 작별을 택하고 독자 노선을 걷기로 한 것이다.
2000년대 초 힙합계에 처음 발을 들일 때부터 동고동락해왔던 이들과의 작별 선언. 비지는 최근 SNS 계정에 올린 입장글에서 필굿뮤직을 ‘인생 절반을 함께한 곳’이라고 표현하면서 “오랜 고민 끝 홀로서기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비지의 입장글은 힙합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동시에 각종 추측도 낳았다.
“초심과 열정을 되찾고 싶었어요”.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한 비지가 밝힌 홀로서기 결심의 진짜 이유다. 비지가 필굿뮤직을 떠난 뒤 언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 안전과 편안함만을 추구해온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전 영감을 좇는 사람이자 주는 사람이었는데, 초심을 잃어 그런 것들이 메말라 간다고도 느꼈고요.”
비지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타이거JK와 드렁큰타이거 활동을 함께하며 국내외 각종 무대를 누볐다. 이에 더해 타이거JK, 윤미래와 함께 결성한 3인조 힙합 그룹 MFBTY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을 들려줬다. 그 사이 종종 솔로곡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드렁큰타이거 활동과 MFBTY 팀 활동에 비해 솔로 활동 비중이 적었던 게 사실이다.
홀로서기라는 과감한 도전을 택한 비지는 “이제부턴 솔로 아티스트 비지의 음악을 들려드리는 데 온전히 집중해보려고 한다”고 밝혔다.
비지는 “크리에이티브한 일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면서 앞으로 펼칠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홀로서기 선언 이후 쏟아진 힙합계 동료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힙합계 동료들은 비지를 ‘일기형 래퍼’라고 칭한다. ‘삶을 녹인 진솔한 가사를 쓰는 래퍼’라는 의미다. 비지는 “가사를 멋지게 포장하고, 영화 대사처럼 만드는 래퍼들도 있는데 전 예전부터 일기에 라임을 맞추는 게 음악 작업의 시작점이었다”면서 “그래서인지 저에게 앞으로 오래오래 계속해서 앨범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타이거JK 또한 비지의 새 출발에 응원을 보탰다. 비지는 “JK 형이 ‘열심히 해서 대박 나라’고 얘기해주더라”고 미소 지으면서 “필굿뮤직과 MFBTY는 여전히 나의 일부다. 언젠가 다시 멋진 무대에서 ‘엔젤’(Angel, MFBTY의 대표곡)을 함께 부를 날이 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때만이라도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셨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발표한 곡이에요. 새 출발 이후 처음 발표하는 곡인 만큼 너무 무겁지 않은 분위기의 곡을 택했습니다.”
‘말리부’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9월에는 또 다른 신곡 ‘갸우뚱’을 발표할 계획이다. 비지는 “앨범 단위 결과물도 준비하고 있다”면서 “작업을 끝내놓은 곡도, 새롭게 작업 중인 곡도 많다”고 밝혔다.
15년 전 ‘헤어진 다음 날’을 타이틀곡으로 한 미니앨범 ‘비저너리’(Bizzionary) 발매한 이후 싱글 형태로만 솔로곡을 냈던 비지의 새 앨범을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비지는 인터뷰 도중 휴대전화에 저장해놓은 몇몇 곡의 데모 버전을 들려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지는 ‘원빅피그’(ONEBIGPIG)라는 독립 레이블도 만들었다. 그는 “개인사업자 등록 절차를 밟아본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웃어 보였다. 사명 ‘원빅피그’의 탄생 배경에 대해선 “서양화 작가, 팝 아티스트 등 오래 전부터 소통해오던 친구들과 함께 삼겹살을 먹으면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정한 이름”이라고 설명하며 웃어 보였다.
“‘한달에 한 번씩 한돈 먹으면서 회의하자’고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만든 집단이에요. 요즘 이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그림도 배우고 영상 편집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힙합은 단순히 음악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움직임이자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런 점에서 볼 때 BTS(방탄소년단)와 블랙핑크를 비롯한 K팝 아티스트들까지 랩을 하는 지금은 ‘힙합 플러스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이런 현상을 보며 힙합 아티스트와 팬들이 자랑스러움을 느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 음악이 전 세계에 퍼지는 게 소원이야’라는 말을 하면 웃었는데 지금은 ‘네가 맞았다’고 하죠.”
그런 ‘힙합 플러스’의 시대에서 비지는 “심장에서부터 꺼낸 진심을 음악에 담은 힙합 뮤지션이 되겠다”는 소신을 품고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나가겠다는 포부다.
“힙합을 통해 얻은 게 많아요. 덕분에 힘든 일을 극복해올 수 있었고, 많은 팬들과 친구들도 생겼죠. 이젠 제가 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활동을 정말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에요. 아직 못다 한 말도, 못다 들려 드린 이야기도 많으니 저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와서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