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 트랩과 18번홀’…임성재가 돌아본 첫 우승의 길①

  • 등록 2020-03-03 오전 10:33:02

    수정 2020-03-04 오전 11:14:42

임성재.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임정우 기자] “우승하기 위해서는 버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베어 트랩에서 승부를 걸었습니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 임성재(22)가 자신의 PGA 투어 통산 50번째 출전 경기에서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는 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 비치 가든스의 PGA 내셔널 챔피언 코스(파70)에서 끝난 PGA 투어 혼다 클래식(총상금 700만달러)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그는 대회 마지막 날 4언더파를 치는 집중력을 발휘했고 단독 2위 매킨지 휴즈(캐나다)를 1타 차로 따돌리는 짜릿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임성재는 3일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PGA 투어 정상에 오르게 돼 너무 행복하다”며 “이번 우승을 발판삼아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임성재는 이번 대회 승부처를 베어 트랩과 18번홀로 꼽았다. 이번 대회 개최 장소인 PGA 내셔널 챔피언 코스는 PGA 투어에서 손꼽히는 난코스다. 그중에서도 이 코스를 설계한 잭 니클라우스의 별명(곰)을 따서 만들어진 베어 트랩이라고 불리는 15~17번홀이 가장 악명 높다. 18번홀 역시 쉬운 홀은 아니다. 홀 오른쪽에 해저드에 도사리고 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게 만든다.

대회 마지막 날 임성재는 베어 트랩과 18번홀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이전과는 다르게 핀을 직접 노리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다. 전략은 딱 맞아떨어졌다. 임성재는 15번홀과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냈고 PGA 투어 우승을 완성했다. 임성재는 우승으로 가는 길이었던 베어 트랩과 18번홀을 어떤 생각으로 플레이했을까. 임성재에게 직접 들어봤다.

◇15번홀, 파3 180야드

베어 트랩의 시작인 파3 15번홀은 180야드로 길지 않다. 그러나 그린 왼쪽에 벙커, 오른쪽에 해저드가 있어 선수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상당하다. 마지막 날에는 앞바람이 강하게 불고 홀의 위치가 오른쪽 해저드 바로 옆에 있어 선수들에게 압박감을 더했다.

임성재는 고민 끝에 핀을 직접 보고 5번 아이언으로 페이드 샷을 구사했다. 똑바로 날아가다가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페이드는 임성재가 가장 선호하는 구질이다. 결과는 완벽했다. 그는 약 2.4m 거리에 공을 붙였고 가볍게 버디를 잡아냈다.

그는 “우승하기 위해서는 15번홀 버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격적으로 쳤다”며 “그린 가운데를 보고 페이드를 걸었는데 원하는 샷이 나와 버디를 할 수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5번 아이언으로 홀의 위치가 해저드에 붙어 있는 상황에서 핀을 직접 공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임성재도 느끼는 부담감은 엄청났다. 그러나 버디가 필요한 만큼 핀을 직접 공략하는 승부를 걸었다.

그는 “샷을 하고 난 뒤 공이 오른쪽으로 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몸을 비꼬았다”며 “다행히 공이 핀을 향해 날아갔고 버디를 잡아 역전 우승의 불씨를 지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6번홀, 파4 427야드

베어 트랩의 유일한 파4인 16번홀은 오른쪽에 길게 자리 잡은 해저드가 선수들을 위협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피할 곳은 페어웨이 왼쪽 벙커다. 페어웨이 벙커 턱이 높은 만큼 공이 들어가면 두 번째 샷 공략이 어려울 수 있다.

임성재는 페어웨이를 지키기 위해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를 잡고 티샷을 했다. 그러나 티샷은 왼쪽으로 감겼고 들어가면 안 되는 페어웨이 벙커에 빠졌다. 벙커 턱의 높이는 레이업을 생각할 정도로 높았다.

그러나 임성재는 5번 아이언을 잡고 그린을 바로 봤다. 그는 헤드 페이스를 열고 강한 스윙을 했다. 임성재의 손을 떠난 공은 그린 위에 떨어졌고 파를 기록해 베어 트랩 두 번째 홀을 파로 무사히 마쳤다.

그는 “우승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파를 해야 하는 만큼 그린을 직접 공략했다”며 “해저드에 빠지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쳤는데 그린에 올라가 깜짝 놀랐다”고 설명했다.

PGA 내셔널 챔피언 코스의 베어 트랩을 설명하는 안내판. (사진=AFPBBNews)
◇17번홀, 파3 148야드

베어 트랩의 마지막 관문. 강한 앞바람을 뚫고 해저드를 넘겨야 하는 파3 17번홀은 베어 트랩에서도 가장 난도 높은 홀로 꼽힌다. 17번홀의 2018년 평균 타수는 3.53타다. 지난해에도 33개의 공이 해저드에 빠지는 등 선수들의 발목을 잡았다.

임성재는 15번홀과 16번홀에 이어 17번홀에서도 핀을 직접 보고 치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는 17번홀에서도 15번홀처럼 홀 왼쪽을 보고 페이드를 구사했다. 7번 아이언으로 친 티샷을 홀 옆 약 2.4m 거리에 떨어졌고 완벽한 버디 기회를 잡았다.

1타 차 단독 선두였던 임성재는 차분하게 자신의 버디 퍼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임성재와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우승 경쟁을 벌였던 휴즈가 약 16m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임성재를 압박했다. 그러나 임성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1타 차 단독 선두를 유지했다.

그는 “가장 까다로운 15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만큼 17번홀에서도 핀을 보고 쳤다”며 “페이드가 원하는 대로 걸리면서 홀 옆에 떨어졌고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휴즈가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면서 더 집중하게 됐다”며 “마지막 날 퍼트가 잘 됐기 때문에 17번홀 버디 퍼트도 자신 있게 쳤다”고 덧붙였다.

◇18번홀, 파5 551야드

베어 트랩은 아니지만 1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임성재에게 18번홀을 중요한 홀이었다. 그는 티샷을 페어웨이 왼쪽으로 보냈지만 두 번째 샷으로 페어웨이에 공을 올려놨다. 세 번째 샷이 88야드가 남은 만큼 임성재가 또 하나의 버디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됐다.

그러나 임성재는 뒤땅을 쳤고 공을 그린 앞 벙커에 빠졌다. 다행인 건 벙커 턱을 맞고 들어가 라이가 좋았다는 것이다. 임성재는 자신 있게 네 번째 샷을 쳤고 공은 홀을 스치고 약 0.5m 거리에 멈췄다. 임성재는 파 퍼트를 성공시켰고 PGA 투어 첫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는 “벙커샷에 자신 있었기 때문에 네 번째 샷은 걱정하지 않았다”며 “프로가 된 뒤로 88야드에서 뒤땅을 쳐본 적이 없는데 몸이 나도 모르게 긴장한 것 같다. 마지막 18번홀에서 잘 마무리하고 우승하게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임성재.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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