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슬럼프에 빠진 타자가 배트에 열심히 테이핑을 한다. 짧게 잡은 방망이, 선수들이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 못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뭔가 결기까지 느껴진다. 짧게 잡은 배트는 욕심을 버리고 가볍게 치겠다는 의식처럼 받아들여진다. 반대로 길게 잡은 배트는 크게 치려는 욕심의 상징 처럼 여겨진다.
지금 롯데 손아섭이 그렇다. 손아섭은 5월 이후 부진에 빠지자 최근 배트 노브 윗 부분에 두꺼운 테이핑을 했다. 짧게 치겠다는 의식을 하 듯 방망이에 정성껏 테이핑을 하고 경기에 나선다.<사진 참조>
| 손아섭이 테이핑을 한 채 배트를 짧게 잡은 모습. 사진=SBS스포츠 중계 장면 캡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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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손아섭은 짧게 잡은 방망이로 큰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손아섭은 배트에 처음 테이핑을 했던 2014년 타율 3위(.362) 최다안타 2위(175개) 득점 4위(105득점) 등 공격 전 부문에서 최고의 성적을 남겼다. 홈런도 18개나 쳤다. 자신의 시즌 최다 기록이다. 이후 손아섭은 짧게 틀어 쥔 방망이를 선호했다.
올 시즌들어 테이핑을 잠시 풀었었다.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짧게만 치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슬럼프가 찾아왔고 손아섭은 다시 배트에 테이프를 감기 시작했다.나름 성과가 있었던 듯 22일 사직 두산전서는 모처럼 멀티 히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짧게 잡고 치는 방식이 반드시 유리한 것일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린다. 짧게 잡아야 좋은 타격이 가능하다는 측의 목소리가 크지만 반대 주장에도 최근 힘이 실리고 있다.
타격 분석 전문가인 이종렬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짧게 쥐고 치면 공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빨리만 가서는 안된다. 빠르게 가서 힘껏 칠 수 있어야 한다. 길게 잡고 칠 때 공 까지의 스피드는 좀 느려질 수 있지만 공에 가해지는 힘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관성 모멘트 이론이다. 관성 모멘트란 회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물체가 계속해서 회전을 지속하려고 하는 성질의 크기를 나타낸 것이다. 회전하는 물체가 회전을 유지하려는 힘을 뜻한다. 길게 잡고 크게 칠 때가 짧게 잡고 칠 때 보다 그 힘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손아섭과 대화를 해보니 안 맞으며 2루 땅볼이 늘었다고 한다. 배트에 너무 공이 빠르게만 맞아서 나오는 현상일 수 있다. 나름의 방법이 있겠지만 꼭 짧게 잡아야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손아섭 사진=롯데 자이언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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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는 4월6일 사직 SK전서 손아섭이 길게 쥔 배트로 밀어쳐서 홈런을 만든 장면이다. 이 위원은 이처럼 관성 모멘트를 유지하면서 밀어치면서 타격감을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타격 이론에 정답은 없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발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부진에 대한 손아섭의 처방이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른 선수들은 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