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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연말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최익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뭔가 준비하고 있는데 상의할게 있어요."
또 도전? 슬몃 웃음이 나왔다. 현재 최익성의 직업은 배우다. 또 기업체 등에서 초청을 받아 강연도 하고 있다. 이번엔 또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책을 내겠다고 했다. 여기까진 크게 놀라지 않았다. 7번(팀은 6개)의 이적과 끊임없는 도전. 그의 도전의 마지막 즈음엔 몇차례 출판제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을 들으며 조금씩 고개를 가로젓게 됐다. 그냥 책을 내지는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출판사의 도움을 최소화해서 자신이 스스로 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몇몇 출판사를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보통 출판사의 제의로 제작에 들어가면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것 외엔 없다. 어지간한 이름값이 아니면 제목도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내용도 바뀌기 십상이다. 대신 작가에겐 인세가 돌아간다.
남는게 많지는 않아도 훨씬 편한 길이다. 돈을 좀 벌어볼 심산이라면 마케팅 능력을 지닌 유명 출판사를 구하는 길이 빠르다.
그에게 출판 제의를 했던 회사들은 그의 실패에 초점을 두려 했다. 감성에 호소하겠다는 뜻이다. 그런 책이되면 야구나 인생 이야기보다 그 뒷 이야기, 여자나 술, 약물 등등이 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익성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삶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에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책을 (자비로)스스로 제작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투자를 구하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자신만의 돈으로 시작하고 끝을 볼 계획이다.
최익성이 꿈꾸는 책은 일종의 자기 계발서였다. 한참 이야기를 듣다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성공한게 없잖아요. 자기 계발서라 하면 보통 성공한 인물이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로 꾸며져야 할텐데…."
최익성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그렇게 얘기해요. 하지만 난 아직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잖아요. 나처럼 많이 좌절해 본 사람도 많지 않을걸요. 그래도 내가 왜 여전히 싸우고 있는지 얘기하고 싶어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는 있겠죠. 그래도 단 한사람, 나아가서 세상의 1%만이라도 날 이해할 수 있으면 돼요.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를 믿어주는 지도자를 만났을 땐 꽃이 필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의 눈엔 '고집쟁이'로 비칠 뿐이었다.
수없이 타격폼을 바꾸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최익성은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만의 분명한 이유도 갖고 있었다.
최익성과 비슷한 경우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도자의 지시대로 자신을 맡기지 않으면 눈 밖에 나게 되고, 이런 선수들은 기회를 잡지 못해 결국 사라져버리게 된다.
최익성이 남다른 건 그 다음부터다. 최익성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노력하겠다고 자신했다.
최익성은 "사회에 나와보니 나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부당하게 느껴지는 요구에 순응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떠돌이가 돼야 하고. 세상엔 저니맨이 나 하나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난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웠어요. 그때 배운 것들이 다음 도전을 하는 힘이 됐구요. 그래서 난 아직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책 제목도 정해놓았다. '저니맨'. 최익성의 별명이다. 그가 이 제목에 집착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신은 여전히 긴 여행 중이라는 의미에서다. 하긴,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는데 누가 실패와 성공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최익성은 절친한 후배인 이승엽을 만난 이야기를 해줬다. 이승엽은 책을 내겠다는 그에게 "내가 살면서 형 처럼 100% 자신감을 잃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나이 40이라면 더 그렇죠"라고 했단다.
이데일리 SPN은 그런 최익성의 이야기 조금 먼저 들여다보기로 했다.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은 원고지만 그가 하고 싶다던 말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했던 탓이다.
이메일도 보내지 못하는 컴맹 최익성. 그는 손가락 두개로 A4용지 80여장에 빼곡히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냈다. 무슨 말이 그리 절실하게 하고 싶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