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한국영화를 이끈 두 거장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양성한 제자들이 하반기 박스오피스를 이끌 극장가의 구원투수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바 ‘박찬욱·봉준호 키드’로 불리는 이들의 작품들은 상업적 흥행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은 물론, 개봉 전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들의 러브콜이 쏟아지며 작품성 검증까지 완료했다. 여름 한국영화 빅4의 마지막주자로 흥행 선두를 달리고 있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과 9월 개봉을 앞둔 ‘잠’의 유재선 감독, 추석 개봉하는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의 김성식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애제자로, 영화 ‘쓰리, 몬스터‘ ’친절한 금자씨‘ ’파란만장‘ 등의 조연출 출신이다. 엄태화 감독은 영화 ‘잉투기’(2013)로 데뷔해 강동원 주연 ‘가려진 시간’(2016)으로 이미 평단 및 언론에선 일찍이 몽환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돋보이는 젊은 감독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상업적 흥행에서 쓰디쓴 성적표를 받았고, 누적 관객수 51만 명, ‘가려진 시간’의 실패를 딛고 7년 만에 절치부심해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내놨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이 발생해 폐허가 된 서울에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남은 황궁 아파트에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물이다.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등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은 작품. 시사회 때부터 평단, 매체들 사이에서 “올해 최고의 한국 영화”,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란 호평을 한몸에 받더니 개봉 직후 1위를 달리고 있던 ‘밀수’를 제치고 한국영화 중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개봉 첫 주 100만 돌파, 광복절 지나 200만을 넘었으며 개봉 2주차 주말을 앞두고 300만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 실관람객 입소문에 힘입어 손익분기점 돌파 및 장기흥행도 가능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 엄태화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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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열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출품할 유일한 한국영화에 선정되는 경사도 만났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7일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과 경합한 결과,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나라별 1개씩만 낼 수 있는 아카데미 출품작으로 뽑았다고 발표했다. 영진위 측은 “심사위원 7인 만장일치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선정했다”며 “아카데미를 감동시킨 영화 ‘기생충’에서 발견된 계급이란 화두를 다루고 있고, K컬처, K무비의 경향에도 부합돼 북미에 어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세계 4대 영화제로 불리는 북미 최대 규모의 토론토 영화제를 비롯해 시체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하와이 국제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들의 러브콜들도 이어지고 있다. 스승인 박찬욱 감독은 엄태화 감독과의 GV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대해 “허세없이 정석대로 만든 작품”이란 찬사를 보내기도. 엄 감독은 박찬욱 감독에 대해 “연출자의 덕목과 자세,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을 배웠다”면서 “콘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리허설을 꼼꼼히 하는 감독님의 스타일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 어느 순간 감독님 스타일처럼 영화를 만들고 있더라”고 존경을 표했다.
오는 9월 6일 출격을 앞둔 정유미, 이선균 주연 ‘잠’은 ‘옥자’의 연출부 출신으로 봉준호 감독의 제자인 유재선 감독이 선보인 장편영화 입봉작이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잠’은 지난 5월 열린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처음 베일을 벗은 뒤 국내외 평단, 매체들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단순한 몽유병에 대한 상상력과 교묘한 변화”, “숨 쉴 틈 없이 매력적이고 드라마틱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칸을 시작으로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판타스틱 페스트에 초청되며 해외 영화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스승인 봉준호 감독은 ‘잠’을 보고 “근래 10년간 본 작품들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를 경험했다”는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남겼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출연했던 이선균은 유재선 감독에 대해 “봉준호 감독과 닮은 점이 많다. 봉 감독님처럼 콘티가 매우 명확하고 꼼꼼하다”고 평했다.
| 지난 5월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프리미어 상영회를 연 ‘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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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개봉을 확정한 강동원 주연 ‘천박사의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이었던 김성식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입봉작이다. 제작사가 ‘베테랑’, ‘엑시트’, ‘모가디슈’, ‘밀수’를 내놓은 외유내강에 강동원, 이동휘, 이솜, 허준호 등 충무로의 핫한 배우들이 다 모였다. 또 송강호 주연 ‘거미집’, 하정우 임시완 주연의 ‘1947 보스톤’(감독 강제규) 등 대작들과 경쟁을 앞둔 상황. 특히 ‘거미집’은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 ‘1947 보스톤’은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 등 흥행 거장들의 작품으로 경쟁 상대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천박사’가 강동원이 오랜만에 선보인 코믹 액션 장르에 퇴마 코드,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의 조감독이 내놓는 작품이라는 점에 큰 기대를 거는 영화 팬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이 젊은 감독들이 코로나19 이후 무너져가는 한국 영화를 다시 일으킬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기대를 걸게 만든다”고 전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박찬욱, 봉준호 이후의 한국영화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해외 영화계에 차세대 한국영화를 이끌어나갈 젊은 피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반갑게 생각한다”며 “특히 두각을 드러내는 감독들이 두 거장의 제자들이라는 점을 해외 영화계에서도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잠’은 어떤 면에서 앞서 길을 닦아둔 봉준호, 박찬욱 등 선배들이 남긴 작품들보다도 뛰어난 점을 발견할 수 있던 소중한 작품”이라며 “흥행 여부, 관객수를 떠나 이들 덕분에 2003년 이후 올해 극장에 걸린 한국 영화들이 그 어느때보다 다양성 측면에서 황금기를 맞이하지 않을까 감히 확신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