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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평양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제 맞춤 축구화가 탄생한 지역이다. 내가 만든 수제 축구화가 '본고장' 평양에 입성하게 된 것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북한 4.25천리마축구단 여자팀 전용 축구화 50켤레를 맞춤 제작한 김봉학 신창축구화 사장은 국내 유일의 맞춤형 수제축구화 제조 장인이다.
수제 맞춤 축구화는 1930년대 평양에 문을 연 서선축구화(사장 노정영)에 의해 국내에 첫 선을 보였다. 이후 한국전쟁 기간 중 부산으로 피난한 노 사장의 아들 노지호 씨가 서경축구화를 설립한 후 서울에 정착하면서 남한 지역에도 수제 축구화를 만드는 기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한때 많은 이들이 축구화 장인(匠人)을 자처하며 고유 브랜드를 단 맞춤형 축구화를 만들어 팔던 시기가 있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부분 생산을 중단했고, 현재 신창축구화만이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구에 있던 운동화 제조 공장에 들어가 수제 맞춤 축구화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독립해 자신만의 공장을 갖게 됐고, 1993년부터는 '뫼 산(山)'자 모양에서 착안한 신창축구화 고유 로고를 디자인해 제품에 부착했다.
김 사장은 수제 축구화 제작 뿐만 아니라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기존 메이커 제품의 수선 업무도 병행한다. 특정 부위가 닳거나 파손된 축구화를 특유의 노하우를 활용해 새것처럼 고쳐주는데, 기성 제품을 구입한 후 김 사장에게 가져와 자신의 발에 맞게 고쳐달라며 '튜닝'을 요구하는 고객도 꽤 있다.
입소문을 타고 축구 동호인들이 몰려들면서 돈도 제법 벌었다. 수제 축구화 브랜드를 포기한 여타 장인들과 달리 현재까지도 신창축구화를 꾸준히 생산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하지만 삶은 그리 풍족하지 못하다. 아들 성곤 군(16)이 선천성 심장 판막증과 뇌경색 증상으로 인해 장기 투병 중인 까닭이다.
김 사장의 향후 목표는 북한 지역에 '신창축구화' 브랜드를 단 수제 축구화를 널리 보급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난해 평양을 방문해 4박5일간 머물며 북한 측 관계자와 축구화 사업과 관련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히면서 "북한은 425팀 축구화 보급 뿐만 아니라 축구화 공장 설립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평양 시내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수제 축구화 공장이 건설되고 있으며, 내가 기술을 전수하면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북한 선수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신창축구화를 널리 보급하고 싶다"는 포부를 공개한 김봉학 사장은 "지난 30여년 간 한국 사람의 발 특성에 맞는 축구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해외 유명 메이커에 비해 인지도는 낮을지언정 기능만큼은 최고라 확신한다"며 밝게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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