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주가 '겨울 희망'을 '봄의 약속'으로 만드는 법

  • 등록 2009-11-25 오전 11:37:55

    수정 2009-11-25 오후 12:17:26

▲ 사진=LG 트윈스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주전이 되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겨울은 희망의 계절이다. '내년엔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시즌 중 어두운 실내 연습장을 전전하며 느꼈던 답답함도, 관중석이 텅빈 그라운드에서 파이팅을 내야 하는 외로움도 잠시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때문에 매년 겨울이 되면 그들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누구보다 열심히, 또 기력 넘치게 훈련에 임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들도 우선 그들에 주목한다. 언론에 '미래의 4번타자' '선발 한 자리를 꿰찰 재목'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현실은 오래지 않아 그들을 덮친다. 겨울이 녹아 봄이 되면 결국 그 자리를 지켰던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2군 선수들도 3월즈음이 되면 이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분명 출발이 늦었던 주전 선수들이 어느새 몸을 추스리고 있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아픔을 몇차례 경험했던 선수들 중엔 일찌감치 경쟁에서 탈락하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꿈이 클 수록 절망도 크기 때문이다.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서용빈 LG 타격 코치에게 길을 물어 보았다. 그는 철저한 무명선수였지만 첫해 겨울을 견뎌낸 뒤 화려한 백조로 날아오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 코치는 매우 간단하지만 그만큼 힘든 답을 내놓았다. "결과를 보여줄때까지 그저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서 코치는 "고민할 시간에 한번 더 스윙하는 것이 낫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내가 보여준게 없다면 결국 감독의 눈에 확실한 결과물을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고민이 깊을 수록 더 절실하게 매달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아무리 유망주라 해도 실적이 없으면 기회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주전 선수들에 비해 기회가 적다. 한번 못치면 끝이다. 또 언제 그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한번의 기회에 자신을 보여주려면 훈련 외엔 답이 없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 코치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그가 입단했던 1994년 주전 1루수 후보는 김선진과 허문회였다.

캠프 초반 몇차례 서용빈의 이름이 언급되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무게 중심은 그 둘에게 쏠렸다.

서 코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스프링캠프가 한참이던 어느날 주니치와 연습경기가 잡혔고 서 코치는 주니치 1.5군(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함)급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다.

당시만해도 일본 프로야구는 우리보다 몇 수 위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1군에서 좀 던져봤다는 경력만으로도 우리 선수들의 기를 죽이기 충분했다. 무명의 서용빈이 그런 일본 투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냈다는 건 큰 뉴스였다.

서 코치는 "그게 내 야구 인생에서 첫번째 기회였다. 난 홈런타자가 아님에도 그 순간에 홈런을 때려냈다. 그저 나를 믿고 새벽까지 홀로 방망이를 돌린 덕이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때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선수들이 살 길은 그것 뿐이다. 지금 LG 선수들 중에 그때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선수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서용빈 코치가 말하는 '오지환의 2군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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