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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은 신연호(43) 대구 FC 코치는 이런 바람부터 먼저 밝혔다. 다음 달 1일 개막하는 캐나다 세계청소년(20세 이하)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후배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신 코치가 말하는 그들의 기록은 만만치 않다.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거둔 4강이다. 현 대표팀의 목표 역시 4강 진출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신 코치는 24년 전 자신이 주도했던 '멕시코 4강의 위업‘을 이제는 후배들이 넘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24년 전 신 코치는 요즘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못지 않은 한국 축구의 스타였다. 1983년 6월 12일 멕시코의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우루과이와의 세계청소년 선수권 대회 8강전. 한국이 여기까지 올라 온 것만 해도 세계 축구계가 주목한 대이변이었다.
신 코치는 후반 9분 선제골을 뽑은데 이어 1-1로 팽팽하게 맞선 채 돌입한 연장전에서 전반 14분 만에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렸다. 한국 축구가 마침내 세계 4강에 오르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신 코치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오른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신 코치는 요즘도 김종부, 김판근 등 당시 멤버들과 만나지만 “너무 오래되서 그때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어렵게 대회에 출전했던 과정과 훈련, 그리고 멕시코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으로 병역 면제
당시 청소년 대표팀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은 운이 바탕이 됐다. 한국은 아시아 동부 지역 예선에서 탈락, 세계 선수권 대회 참가는 꿈도 못 꾸던 처지였다. 하지만 아시아 최종 예선 출전권을 가진 북한이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일으킨 난동사건으로 국제대회 출전 정지 징계를 받는 덕분에 북한의 대타로 나섰다.
▲마스크 훈련과 여유있게 시작한 현지 적응
신 코치는 6개월간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할 때 박종환 당시 감독이 현지 적응에 중점을 뒀다고 소개했다. 멕시코 경기장이 고산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 마스크를 쓰고 하는 훈련을 했다. 산소가 부족, 호흡이 곤란한 상황을 대비한다는 차원이었다.
더불어 신 코치는 일찌감치 시작한 현지적응 훈련이 큰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했다. 멕시코 현지에 대회 개막 보름전에 도착, 적응훈련에 들어갔는데 1주일쯤 지나자 시차나 고지대 적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회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있었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던 중국은 개막 1주일 전 쯤 멕시코에 왔다가 예선 조별리그에서 참패 끝에 탈락했다.
▲위압감을 느꼈던 아즈테카 경기장
대표팀은 떠날 때까지 큰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나가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었고, 성적에 대한 기대도 별로 없었던 탓이다.
▲아쉬움도 많다.
신 코치는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을 절감한다고 했다. 당시 멤버 가운데 많은 선수들이 더 크지 못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실력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요즘처럼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하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 프로젝트 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 코치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다. 멕시코 대회를 갔다 온 그해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 부상이 찾아오는 바람에 기대만큼 선수 생활을 꽃 피우지 못한 까닭이다. 어릴 때부터 체력 훈련에 집중하는 등 운동을 무리하게 한 후유증이 원인이었다. 신 코치는 “유소년 시절부터 스포츠 과학에 바탕을 둔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어도...”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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