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은 힘겨워했다. 두산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짖눌렀다. 또 그 시점만 해도 홍성흔에게 손을 내밀 구단은 없을 것 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해 타격 2위에 오르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지만 한계가 있을거란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포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전환을 제안한 김경문 당시 두산 감독과 갈등도 있었다. 트레이드 요구 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두산은 그때 홍성흔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됐다.
지명타자로서 사실상 첫 해였던 2008시즌, 3할3푼1리로 자신의 최고 타율을 기록했지만 “FA를 앞두고 한해 반짝했을 뿐”이라고 수근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롯데행이 결정된 뒤 홍성흔에게 물었다. “두산의 제시액은 얼마였습니까?” 하지만 홍성흔은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건 무덤 끝까지 가져가고 싶습니다. 말하기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라며 고개를 떨궜다. 당시 롯데가 발표한 홍성흔의 연봉은 2억7900만원이었다.
하지만 홍성흔은 그리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았다. 롯데 이적 후 보란 듯이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이후 2년간 더 타격 2위가 되며 ‘3년 연속 타격 2위’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어느새 홍성흔에게 두산의 색깔은 지워진 듯 보였다. 홍성흔은 참 롯데에 잘 어울리는 선수처럼 느껴졌다. 아프게 돌아 선 사이였기에 다시 하나가 될 거란 예상은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이며 한길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다.
4년이 지난 뒤 친정팀 두산은 홍성흔에게 강한 러브콜을 보냈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 여덟. 그러나 두산은 홍성흔이 원하던 4년 보장 계약을 제시했고, 홍성흔을 다시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두산을 떠날 때 홍성흔은 다시 같은 길을 돌아올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시 부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고 했었다. 어쩌면 돌아갈 곳 없다는 절박함이 지금의 홍성흔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을런지도 모른다.
올 FA 시장의 마지막 대박 선수가 된 홍성흔. 4년 전 무덤 속에 묻어 둔 자존심을 되찾은 계약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