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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건 결혼식 축가 이후였다. 마침 어려서부터 알고 지냈던 이모의 친구 남편이 작곡가였다. 그 작곡가에게 노래와 녹음에 대해 배우면서 가수 준비를 했다. 하지만 녹음실이 갑자기 문을 닫았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설하윤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운영이 어려워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서울 압구정동 SM아카데미에 다녔다. 가수가 되고 싶다며 부모 앞에서 울고불고 뗑깡을 부려 학원 등록을 허락받았다. 스스로 준비가 덜 돼 있다고 생각해 연기, 노래, 춤을 더 배우고자 했다. 제대로 연습생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던 셈이다.
설하윤은 걸그룹에 들어가고 싶었다. 여러 곳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다 떨어졌다. 주위에서 ‘가수 말고 다른 걸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있었지만 “싫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 계속 하겠다”고 했다. 가족들은 설하윤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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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대학 진학에 매진할 때 설하윤은 친구들과 공연을 준비했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 서울 홍대 인근 클럽을 빌려 가족, 지인들을 불러 앉혀놓고 공연을 했다.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봐주는 사람들 앞에서 직접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고 박수를 받는 것은 ‘인생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상기시켜줬다.
유명 연기자들이 다수 소속된 매니지먼트사에서 걸그룹을 준비한다고 해 합류했지만 멤버가 자꾸 바뀌고 데뷔 계획도 미뤄지다 회사가 문을 닫았다. 당시 계약기간이 남아 그 기간이 끝날 때까지 PC방, 주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른 기획사들에 연습생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역시 데뷔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연습생 생활을 이어가며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했다. 자신을 계속 믿어주고 지원을 해주는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은 꿈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설하윤은 “잇따른 좌절 속에서도 연습생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혼자서의 힘이 아니었다”며 “가족들의 사랑이 내게 놓을 수 없는 끈이 돼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