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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수원 삼성 감독을 맡던 시절 후회스러운 때가 몇 차례 있었다. 1999년과, 2002년 때다. 1999년은 K리그에서 수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 코리아컵, 정규리그 등을 휩쓸어 시즌 전관왕을 이룬 해고, 2002년은 아시안 클럽컵과 아시안 수퍼컵을 2연패, 아시아 정상의 위치를 굳힌 해였다. 그런데도 이 두 해에 생각이 머무는 것은 당시 '내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하는 회한 때문이다.
팀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말할 수 없는 영광을 얻었지만 선수단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컸다. 더블 스커드를 구성할 수 있는 유럽의 명문 클럽처럼 선수층도 두텁지 않은 상황에서 주전 요원들을 중요하다 싶은 경기에 대부분 투입하곤 했다. 당연히 무리가 따랐다. 결과는 좋았지만 또 그 후유증은 대단했다. 선수들은 선수들대로 피로 누적과 이로 인한 부상에 시달렸고, 나는 나대로 점점 커지는 성적에 대한 중압감에 짓눌려야 했다. 2003년 수원 사령탑에서 물러난 것도 결국 그 후유증 탓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K 리그를 보면서 ‘감독들이 참 어렵겠구나’하고 느낀다. 주말에 정규리그, 주중에 컵대회를 쉬지 않고 치르는 빡빡한 일정 때문이다. 얇은 선수층으로 이런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틀림없이 선수단에 탈이 난다. 뜻하지 않은 부상자가 속출하고, 선수들은 피로를 호소한다. 경기의 질은 낮아지면서 성적 또한 의도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지도자 생활 20년 만에 이런 상황은 처음 맞는다’고 토로한 세뇰 귀네슈 FC 서울 감독을 비롯, 많은 지도자들이 무리한 일정에 따른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올 시즌 K리그에서는 전북이 돋보인다. 초반에는 지난 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후유증으로 다소 부진해 보였지만 최근 정규리그에서 소리 소문없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최강희 감독이 컵 대회보다는 정규리그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시즌 전략을 세우고 차분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사실 큰 대회에서 한번 우승하면 후유증이 따른다. 피로가 쌓이고 긴장감이 풀어지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지난 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 AC 밀란(이탈리아)의 경우 2006~2007 시즌 초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젠나로 가투소, 안드레아 피를로,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등 지난 해 독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하는데 큰 공을 세운 팀의 주축들이 월드컵 우승 여파에 시달린 것도 한 원인이었다. 전북도 초반 이런 요인이 작용했지만 최 감독이 이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선수들이 무리해서 뛰도록 내몰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프로 축구 선수들의 경우 현역에서 뛸 수 있는 시기가 인생에서 길지 않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지도자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축구와는 전혀 별개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 더 많다. 고단한 삶을 살아 갈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지도자들은 현역을 떠난 뒤에도 건강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선수들을 최대한 배려하는 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