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심은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저주의 주문 <기자의 눈>

22일 프로야구 삼성-LG전, 심판 판정 아쉬움
  • 등록 2007-04-23 오후 4:21:46

    수정 2007-04-23 오후 6:19:02

▲ 논란이 된 22일 경기 장면 (SBS스포츠 화면 캡쳐)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22일 잠실에서 열린 삼성-LG전은 연장 12회말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였다. 두 팀은 오랜 라이벌 구도와 김재박 LG 감독과 선동렬 삼성 감독의 설전,여기에 겨우내 쌓은 만만찮은 실력까지 불꽃을 튀기며 볼만한 경기를 연출해냈다.

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하던 경기는 마지막 순간 맥이 풀리고 말았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1루심의 판정 때문이었다.

LG가 2-3으로 뒤진 연장 12회말 2사 1루서 2루 깊숙한 땅볼을 친 이대형은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지만 1루심은 아웃 선언을 했다. 이대형이 펄쩍 뛰어올라 항의를 시작했고 김재박 감독까지 덕아웃을 뛰쳐나와 모자까지 집어던지면 강력하게 판정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지만 별무소용.

발빠른 대한민국의 네티즌은 방송 중계 화면을 캡쳐해 인터넷으로 뿌려댔다. 그 화면엔 이대형의 손이 공보다 조금 더 빠르게 1루 베이스에 닿았음이 담겨 있었다.

이날의 오심은 비단 LG가 졌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대형이 1루에서 세이프 됐다해도 경기는 삼성의 승리로 끝날 수도 있었다.

오심의 핵심 문제는 심판의 그릇된 판정이 낳은 패자가 LG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삼성은 이날 참 좋은 경기를 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중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1-2로 뒤진 9회 1사 1루서 선동렬 감독은 희생번트를 지시하며 확률 베팅을 했고 FA 계약 이후 제 몫을 못했던 4번타자 심정수는 2사 1,2루서 중전안타를 때려내 극적인 동점을 만들어냈다.

심정수의 안타는 빗맞은 타구였지만 치기 쉽지 않은 몸쪽 높은 공을 제 스윙으로 받아쳤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고참 양준혁은 연장 12회 초 선두타자로 나서 우중간을 가르는 2루타로 결국 결승득점까지 올렸다.

어디 그 뿐인가. 불펜의 핵심이 된 권혁은 1.2이닝동안 삼진 2개를 잡아내며 퍼펙트 피칭을 했고 마무리 오승환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제 몫을 다했다. 벤치와 주축 선수들의 집중력이 만들어낸 훌륭한 하모니였다.

그러나 경기 마지막에 불거진 오심으로 이 모든 것은 뒤로 밀려버리고 말았다. 이제 22일 삼성-LG전은 '아.. 그 오심이 있었던 경기'라는 기억만 남기게 됐다.

심판들은 오심 사태가 불거지면 "과도한 업무와 인간적인 실수"를 주로 언급한다. 그건 바꿔 말하면 1년 농사를 좌우하는 포스트시즌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22일 경기 같은 일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도 재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한 심판의 자질 문제를 떠나 '특정팀 밀어주기'라는 의혹까지 불거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 야구사에 또다른 아픈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요즘 같아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심판의 오심은 이처럼 승자까지 패자로 만드는 실로 막강한 저주를 품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럴 수도 있다'며 덮어둘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신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통렬한 자기 반성일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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