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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한국 야구가 다시 한번 세계를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은 3년 전 영광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야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2006년의 추억은 여전히 어제 일 처럼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다. 비단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우리가 걸었던 승리의 길 속에선 '다시 한번' 이길 수 있는 해법도 찾아볼 수 있다.
▲2006년 3월5일 도쿄돔 일본전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리기 전 일본은 우리가 넘기 힘든 산처럼 여겨졌다.
사상 처음으로 일본인 메이저리거까지 대거 참가하는, 진짜배기 국가대항전은 사실상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전력을 기울인 일본에는 우리 야구가 아직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평가였다.
일본전에 대한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1차전이었던 대만전 투수 운영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인식 감독은 선발 서재응에 이어 김병현 구대성 박찬호 등 해외파를 총동원, 대만 잡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특히 마무리 박찬호에겐 무려 3이닝을 맡겼다. 대만을 잡으면 일본전서 패하더라도 2라운드에 나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운영이었다.
'두려운 일본'의 중심엔 이치로가 있었다. 일본을 넘어 메이저리그까지 평정한 이치로의 존재감은 그 자체로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대회를 앞두고 묘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소리내어 이야기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본때를 보여주자'는 암묵적 합의가 대표팀 내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원인 제공자 역시 이치로였다. 이치로는 WBC 1라운드를 앞두고 "상대가 30년 동안은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다분히 라이벌 한국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3월5일 도쿄돔. 2승씩을 거둔 한국과 일본은 2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은 채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다음 승부'에 대한 준비 따윈 의미가 없었다. 자존심이 걸린 한판이었기 때문이다.
출발은 썩 좋지 못했다. 선발 김선우가 경기 초반 흔들리며 1회와 2회 각각 1점씩을 빼앗겼다. 4회 2사 만루 위기서 우익수 이진영이 니시오카의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걷어내지 못했다면 승기를 완전히 빼앗길 뻔 했다.
공격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5회 1사 2,3루서 이병규의 희생플라이로 한점을 따라붙었지만 계속된 2사 1,3루서 이승엽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답답증의 중심엔 이승엽이 있었다. 이승엽은 5회 찬스를 무산시킨 것을 비롯,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그냥 '국민 타자'라는 칭호를 얻은 것이 아니었다. 모두의 소망이 하나로 모아진 순간 더욱 빛을 발하는 그의 방망이는 이날도 여지없이 그때 그 순간, 불을 뿜었다.
한국 야구가 일본 야구의 심장인 도쿄돔에서 힘과 힘의 대결 끝에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이다. 한국 야구의 무한질주를 예고한 통쾌한 승리였다.
*당시 경기엔 또 한명의 숨은 영웅(?)이 있었다. 배영수(삼성)는 이날 0.2이닝을 던졌을 뿐이었지만 그 누구 못지 않은 인기몰이를 했다.
이치로와 승부에서 몸에 맞히는 볼을 던졌기 때문이다. 고의성 여부와 관계 없이, 함부로 입을 놀린 이치로에 대한 징벌로 받아들인 팬들은 그를 '배열사'라 부르며 추앙해 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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