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준철의 스포츠시선]문체부 나선 축협 감사, 본질은 ‘굿 거버넌스’

  • 등록 2024-07-20 오후 1:29:56

    수정 2024-07-20 오후 1:29:56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 사진=연합뉴스
[안준철 스포츠칼럼니스트] 최근 들어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는 여러 축이 있다는 얘기가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축구협회 감사에 나섰다. 축구협회는 최근 5개월째 공석이던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큰 논란을 만들었다. 지도자로서 실적도 없고, 자질도 의심스러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게 출발선이었다.

축구협회는 아시안컵의 실망스러운 성적과 선수 탓으로만 돌리는 태도를 문제 삼아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가면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했다.

5개월 동안 감독 선임 작업을 했다. 우선순위라고 밝힌 외국인 감독 대신 10년 전 ‘의리 축구’ 논란의 장본인인 홍명보 울산 HD 감독을 선임했다.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하는 전력강화위원회 박주호 위원이 “홍명보 감독의 선임은 절차 안에서 이뤄진 게 아니다. 내부에서 활동한 실무자인데도 몰랐다. 지난 5개월이 허무하다”고 폭로하면서 축구협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졌다. 이후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이동국, 조원희 등 전 국가대표에 이어 현역 선수인 구자철도 축구협회를 향한 쓴소리를 내뱉었다.

여론이 불붙은 이유는 분명하다. 감독 선임 과정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투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외국인 감독 후보를 만나러 출장을 떠났던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는 귀국 후 홍 감독을 찾았고 선임이 확정됐다.

이 이사는 8일 감독 선임 브리핑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내게 모든 권한을 줬고, 감독 결정은 스스로 했다”고 밝혔지만, 대중들이 이해할만한 답변은 아니었다. 항간에는 정 회장, 이 이사, 홍 감독이 특정 대학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학연’이 가장 큰 평가 요소가 아녔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모두 감독 선임 절차가 투명하지 않고, 타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로 볼 수 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때도 절차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감독 선임과 관련한 시스템 무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부 주무 부처인 문체부가 ‘감사’라는 칼을 빼든 모양새다. 축구협회는 성실하게 감사에 임하겠다면서도 정부의 협회 행정 개입을 금지한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라 월드컵 출전권이 박탈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문체부로서는 국민적인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문제를 마냥 내버려둘 수 없다. 여기에 지난해 승부조작 선수 사면, 클린스만 감독 선임 절차까지 ‘감사 마일리지’가 누적됐다는 입장이다.

물론, 협회·연맹 등 스포츠 조직의 운영에 있어 ‘자율성(autonomy)’을 보장받아야 한다. FIFA 규정도 규정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체육 협회와 연맹 운영에 정부의 개입을 금지하고 있다. 모두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러나 ‘자율성’은 ‘책무(accountability)’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스포츠 조직의 부정부패, 비리 문제가 불거지면, 결국 자율성이 위협받게 된다. 스스로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책무’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책무’는 조직의 체계적인, 민주적인 운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체계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은 명확한 규정, 민주적인 절차, 투명성, 높은 수준의 윤리 의식을 들 수 있다. 이를 통틀어 ‘굿 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이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스포츠는 인종, 성별, 종교,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간을 동등하게 대하는 보편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스포츠 조직은 이를 보존할 의무와 책임감이 있기에 정부나 기업 등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외부 세력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이 ‘자율성’이고, 굿 거버넌스의 시작이다.

앞서 언급한 부정부패, 비리 등이 만연한 스포츠 조직까지 ‘자율성’을 보장할 필요는 없다. 스포츠 조직도 각 국가의 실정법을 적용받는 단체다. 스포츠 조직은 ‘치외법권’ 지대가 아니다.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다면 엄중한 법 적용을 받아야 한다.

이는 유럽 등 해외 사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프리미어리그, 프리메라리가, 세리에A 등 유럽 최고 수준의 축구리그의 명문 클럽팀들이 창립을 시도한 유럽슈퍼리그를 제한한 FIFA와 유럽축구연맹(UEFA) 조치에 대해 독점적인 지위를 남용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국제 축구 대회 주최자로서의 FIFA와 UEFA의 독점적 지위를 제한하고, 새로운 대회를 개최할 때 객관적 기준을 갖추도록 요구했다고 평가받는다.

축구협회의 부실 행정이 직접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끼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축구협회 매년 300억원 이상의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받는 공직유관기관이다.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단체로서 주무부처인 문체부 감사가 이상하지 않다. 불법적인 행위가 있다면, 고발을 통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정부 개입 금지 조항을 내세우는 건 뻔뻔하다. 실제 정부 개입으로 국제스포츠기구로부터 징계받은 사례들을 보면 정부 주무부처가 직접 스포츠 조직 행정에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감사는 직접 행정조치라고 볼 수 없다.

정쟁에 활용되거나 정치적 이슈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가 이용돼선 안 된다. 평소 스포츠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악성 이슈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많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문체부 감사는 축구협회의 자업자득이라는 것이다. 투명하지 못한 행정과 절차, 미숙한 일 처리 등에 대한 여론의 악화, 국민적 의구심은 축구협회가 만든 것이다. 배드 거버넌스(Bad Governance)에는 ‘자율성’을 보장해줄 필요가 없다.

SH2C 연구소장(커뮤니케이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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