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태국 박세리' 쭈타누깐, 가뭄·정치·경제위기 태국에 어메이징 메시지

  • 등록 2016-05-31 오전 8:54:07

    수정 2016-05-31 오전 8:57:50

에리야 쭈타누깐(사진=AFPBBNews)
[방콕(태국)=이유현] “스무 살 소녀 골퍼 에리야 쭈타누깐의 날.”

에리야 쭈타누깐의 우승 퍼트를 기다렸다는 듯이 태국 언론과 SNS는 스무 살 소녀의 LPGA 3개 대회 연속 우승에 대한 격한 감동을 쏟아냈다. 급여일이기도 한 5월의 마지막 월요일 출근길의 방콕 시민에게도 새벽 우승 소식은 아주 기분 좋은 최고의 화제였다.

태국의 영자일간지 방콕 포스트는 리야 쭈타누깐의 닉네임인 ‘넝 메이’를 인용해 ‘메이의 날’ 을 두 번씩이나 겹쳐 쓰며 가장 먼저 속보로 전했다. 태국 일간지 ‘방콕포스트’는 경기 후 “2013년 박인비 이후 처음으로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고 적었다. 태국 유력지 ‘타이라드 데일리’는 “방콕 시암의 딸 쭈타누깐이 데뷔 첫 승과 함께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고 적었다.

태국 페이스북엔 ‘3연속 우승’을 뜻하는 ‘3’자와 함께 ‘어메이징(Amazing) 에리야’라는 해시 태그와 함께 격려의 글이 이어졌다. ‘어메이징 타일랜드’는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태국 상징 표어인데 사람 앞에 ’어메이징‘이 사용되는 일은 흔지 않다.

에리야 쭈타누깐은 지난 5월 9일 요코하마 타이어 LPGA 클래식를 통해 태국 첫 LPGA 우승의 주인공이 된 뒤부터 매사에 느긋한 태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태국 골프팬들에게 에리야 쭈타누깐은 “잘 하지만 우승은 글쎄”라는 수식어가 붙던 선수였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을 놓친 경우가 많은 심약한 마인드 때문에 ‘역전패의 여왕’이란 씁쓸한 수식어까지 붙었다.

태국인들은 3년 전 홈그라운드인 태국에서 열린 혼다 클래식을 또렷이 기억한다. 보기만 해도 우승인데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보기로 박인비에게 역전패 한 뒤 펑펑 우는 모습이 TV로 태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에리야는 지난 5월 9일 첫 우승을 하고 난 뒤에도 “종료 3홀을 남겨 놓고는 다리와 손이 떨렸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에리야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큰 결점을 기억하며 ’골프가 멘탈스포츠‘라는 것에 동의하는 태국인들은 첫 우승도 ‘어쩌다’ 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아직 생일이 안돼 만 20세다. 에리야가 자신의 고질적 핸디캡을 너끈히 극복하고 20여 일 만에 새로운 골프 여제로 초고속으로 올라서고 있는 것은 태국인들에게는 ‘어메이징’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태국은 최근 몇 년간 암울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 알려진 빨강 셔츠와 노랑 셔츠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 끝에 2014년엔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오늘에 이르고 있고, 오는 8월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앞두고 민심 양분이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토 절반에 영향을 주는 최악의 가뭄이 덮쳐 어느 해 보다 서민 고충이 크다. 이 탓에 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아세안 10개국 중 최저인 3% 내외로 예상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에리야 쭈타누깐의 첫 우승에 이은 우승 행진은 외환위기 속에 절망하던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준 1997년 박세리의 LPGA 첫 우승을 떠올리게 한다.

태국 쁘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는 에리야 쭈타누깐이 첫 우승을 차지하자 정부청사에 초청해 퍼팅을 겨루며 “더 많은 대회에서 더 많은 우승을 할 것”이라며 격려했다. 이제 태국인은 스무살 에리야 쭈타누깐의 ‘어메이징 행보’가 계속될 것이라고 ‘확실히’ 믿는 분위기다.

◇(방콕)=이유현 KTCC(한·태교류센터)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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