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저으랄 때, 배에서 내렸다'..정우, 그가 시류에 응답하는 법

  • 등록 2015-12-16 오전 7:15:00

    수정 2015-12-16 오전 7:15:00

영화 ‘히말라야’에서 박무택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정우가 15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정욱기자)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많은 분들이 여쭤봤죠. 회사(소속사)에서도 얘기하던 걸요. 그런데 제 스타일이 그래요. 하나하나 단단하게, 조금 느리게 갈지언정 그게 좋더라고요.”

처음 하는 말은 아니다. 새삼 다시 보게 된다. ‘응답하라 1988’로 하루가 다르게 인기를 키워가는 배우들이 많은 요즘이라 그랬을까. ‘응답하라 1994’로 뜬 배우 정우가 하는 말이 새삼 다시 들렸다.

2014년 초 종영한 ‘응답하라 1994’ 이후 정우는 함께 출연한 배우들에 비해 공백기를 길게 가졌다. 영화 ‘쎄시봉’을 차기작으로 선택해 꼭 1년 후 스크린에서 모습을 보여줬다. 그 후로 또 1년이 조금 지나지 않은 지금, ‘히말라야’다. 정우가 다시 영화로 관객 앞에 선다. 16일, 오늘 개봉된다.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만난 정우를 다시 2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응답하라 1994’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우정 작가과 신원호 PD를 “대단한, 신적인 존재”라고 회상하며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멜로까지 했잖아요. 그 대단한 분들 덕이죠.(웃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요. 제가 한 것에 비해 그 이상으로 관심을 받았으니까요. 정말 솔직히, 그 후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많은 양의 시나리오도 받았고요.”

정우는 머뭇거렸다. 이 작품을 해도 될까,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었다. 이 관심은 뭘까,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많았을 터다. 그런 정우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고. ‘응답하라 1994’를 만나기 전 배우 생활을 하며 ‘이 길이 맞는 걸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의문과 의심에 휩싸였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들의 말을 듣는 게 맞았다. 선택은 달랐다. ‘노 젓다가 그 노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는 과감히 그 배에서 내렸다.

“그 시류에 막 달려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도 2,3년 정도일 거에요. 물론 ‘응답하라 1994’했던 친구들과 비교하면 작품 수가 적긴 하죠 제가. 다작을 하는 것도 참 의미가 있고 좋은 일인데, 저는 어쩌다보니 1년에 한 작품 정도를 하게 됐고요. 그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하나하나 단단하게 조금 느릴지라도 그렇게 가는 게 저한테 맞는 길 같고요.”
‘히말라야’ 정우.(사진=김정욱기자)
선택에 정답은 없지만 정우가 걸은 길은 실패확률이 적은 편이다. 한 작품을 계기로 ‘대세’로 발돋움한 경우, 업계는 그에게 동질의 관심을 쏟기 마련이다. 소위 ‘뜬 캐릭터’와 비슷한 느낌의 인물, 톤을 가진 선에서 작품 제의가 쏟아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적당히 트렌디한, 적당히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만한 작품을 선택했다가 “늘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정우가 작품 선택에 신중을 기한 이유도 이런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터다.

“물론 ‘응답하라 1994’에서 쓴 사투리를 ‘히말라야’에서도 썼고, ‘쎄시봉’에서도 잠깐 썼죠. ‘응답하라 1994’ 이후로 계속 사투리 쓰는 역할만 한다고 비슷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을 감독님들도 생각하시는지 ‘히말라야’ 때는 ‘부담스러우면 사투리 안 써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그건 하나의 장치일 뿐이지 캐릭터 자체가 비슷하게 흘러가는 인물은 아니었잖아요. 제가 공감할 수 있고,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그런 시나리오 하나만 보고 작품을 선택해요. 그 진심이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정우는 연기할 때 본연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했다. 그렇게 ‘캐릭터 일체’가 될만한 작품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 에피소드를 현실적으로 살려낸 ‘응답하라 1994’와 같은 작품에서 그가 온전히 녹아들 수 있는 이유도 시대에 대한 정우의 현실적인 이해가 바탕이 된 덕이었다.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쎄시봉을 모티브로 그 시대 로맨스를 그린 ‘쎄시봉’이나 엄홍길 대장과 고(故) 박무택 대원의 휴먼원정대 이야기를 그린 ‘히말라야’도 마찬가지다.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정우가 외면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전 굉장히 사실주의에요. 영화도 그런 부분에 끌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내가 이 캐릭터라면’ 이런 생각으로 연기를 하려고 해요. 물컵 하나를 잡을 때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연구하지만 결국, ‘아 나라면 이렇게’라고 편하게 마음을 고쳐먹죠. 그 생각 하나에 위안을 얻는 것 같아요. 전 당장 내년, 내후년을 보고 싶진 않거든요.초심보다 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죠. 10년 후 보면서 달려가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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