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미, 단편 영화계 스타는 왜 산으로 갔나?

  • 등록 2009-07-29 오전 9:12:00

    수정 2009-07-29 오전 9:24:51

▲ 정유미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1983년 1월생 정유미의 필모그래피를 검색하면 19편의 영화가 목록에서 뜬다. 그중 3분의 1은 서울예전 영화과 재학 시절 촬영한 ‘플라로이드 작동법’ 등 단편 영화다.

정유미는 6분 분량의 ‘플라로이드 작동법’으로 단편영화계의 스타가 됐다. 김종관 감독의 단편 ‘플라로이드 작동법’은 좋아하는 남자 선배에게 플라로이드 카메라 작동법을 배우려는 한 여대생에 관한 영화다. 정유미는 6분 남짓의 ‘플라로이드 작동법’에서 말없이 그저 눈빛과 표정만으로 첫 사랑의 설레는 감정을 표현했다.

이후 정유미는 2005년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에서 신민아의 친구 역할로 잠깐 출연한 뒤 같은 해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에서 어린 조인영 역을 맡아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다. 첫 사랑의 열병을 앓은 후 겪어보니 별것 아니더라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떨어지는 벚꽃을 보던 조인영의 얼굴은 ‘사랑니’의 마무리였다. 그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는 정유미에게 신인연기상을 안겼다.

정유미가 다시 한 번 영화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2006년 개봉한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에서였다. 정유미는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온누리의 햇살’처럼 다른 남자들도 챙겨주는 채현 역으로 출연했다. 문소리, 고두심, 공효진 등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이 출연한 ‘가족의 탄생’에서도 정유미의 연기는 인상적이었다.

삐친 남자친구 경석(봉태규 분) 앞에서 “헤픈 게 나쁜거야?”고 사심 없는 눈빛으로 묻던 채현의 모습은 ‘가족의 탄생’의 명대사, 명장면으로 꼽힌다. 정유미는 ‘가족의 탄생’으로 데살로니카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공동수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신정원 감독의 영화 ‘차우’는 식인멧돼지 차우를 추격하는 5인의 추격대원들의 좌충우돌을 담은 괴수어드밴처 영화다. 정유미는 약 8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차우’에서 야생멧돼지를 연구하는 대학원생 변수련으로 분했다. 변수련은 식인멧돼지 소식을 듣고 차별화된 논문으로 대박을 바라며 추격대 유일의 홍일점으로 가세한다.

지금까지 정유미가 나온 출연한 작품 중에 가장 이질적인 영화가 ‘차우’다. 정유미 스스로도 여름철 대형상업 영화에 자신이 출연하게 될 줄 몰랐다고 한다. 게다가 ‘차우’에서 정유미가 연기하는 변수련은 복합적이거나 섬세한 감정을 표출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의외의 선택이었다는 말에 정유미는 “시나리오를 보니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인물들이 떼로 나와 본 적도 없고. 처음부터 막 재밌지는 않았지만 하면서 너무 재미있었다”고 답했다.

정유미는 변수련의 캐릭터를 위해 첫 시나리오에는 없던 교정기를 끼고 안경을 썼다. 그렇게 해보니 정말 변수련이 된 거 같단다. 영화에서 변수련이 메고 다니는 배낭에는 취사도구와 야영도구가 실제로 담겨 있었다. 촬영하다가 그 무게에 넘어진 적도 많다. 그것을 빼달라고도 할 법한데 정유미는 싫은 소리 없이 메고 달렸다. 덕분에 산속을 해매는 변수련의 움직임에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다. 또한 변수련의 자연스러운 엉뚱함은 ‘차우’의 쉼표로 작용한다.

단편 영화계의 스타에서 여름철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연까지 정유미의 연기 스펙트럼은 넓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정유미는 스틸 카메라 앞에서면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 몰라 머쓱해하는 연예인이다. 스스로 ‘연예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자신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다.

정유미는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다”며 전보다는 덜 어색한 표정으로 인터뷰 사진을 촬영했다. 촬영 전 정유미는 인터뷰 때와 달리 다소 큰 목소리를 냈다. 인사를 위해서다. “포즈는 잘 못 취해도 인사하는 건 잘 할 수 있으니까 인사라도 잘해야죠. 아직도 어색하지만 이왕이면 사진을 잘 찍고 싶고. 점점 나아지겠죠?” 정유미가 본인의 배우답지 않은 서툰 포즈 때문에 당황(?)해하는 사진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 정유미


정유미는 올해 ‘차우’ 외에도 8월 개봉하는 ‘10억’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첩첩산중’, 한일 합작영화 ‘오이시맨’, 외에 독립영화인 ‘그녀들의 방’과 영화 평론가 정성일의 감독 데뷔작 ‘카페 느와르’도 촬영했다. 이렇게 많은 영화에 캐스팅 되는 비결은 무엇인지 노트북을 접으며 넌지시 물었다.

정유미의 대답은 간결하면서 간절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찍다보니 그렇게 된 건데요. 어쨌든 영화 촬영현장이 정말 좋아요 정말이에요.”

(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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