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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MBC에서 방영중인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에서 손진영은 매주 화제를 몰고 다닌다. 그의 목소리와 창법은 늘 심사위원 대부분에게 혹평을 받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작은 기적을 일으키며 당당하게 ‘생존자’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비가 아니었던 적 없지만 그는 늘 살아남는다.
22일 방송에서도 그랬다. G.O.D의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를 참 담백하게 잘 불렀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은미는 “뒤로 갈수록 진부하고 이곡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했고, 방시혁은 “손진영의 해석은 적합하지 않았고 멘토들이 한결같은 충고를 지켜야만 오랫동안 노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최저점이었다.
그러나 또 한번 기적이 일어났다. 손진영은 대국민 투표를 통해 최종 6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의 노래를 참 편하게 잘 들었던 기자 입장에서도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방송이 끝나갈 즈음, 한 사람이 떠올랐다. ‘저니맨’ 최익성이었다.
최익성은 수없이 많은 팀을 떠돌아다녔다. 한때 20(홈런)-20(도루)를 해냈던 호타 준족의 대명사였지만 그의 엉성한 타격폼과 수비는 늘 지도자들의 인정을 받는데 장애물이 됐다.
하지만 최익성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가 믿고 있는 방식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 “안된다”고만 했지 “왜 안되는지” 그를 납득시켜주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고집은 야구계에서 더 이상 자리매김할 수 없는 수준까지 그를 밀려나게 한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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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익성은 아직 ‘실패’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때 배우의 길을 걷기도 했으며 어느날엔 ‘1인 출판사’를 세워 그의 인생을 담은 ‘저니맨’이란 책을 출간했다. 현재 그의 직함은 책의 저자이자 출판사 사장이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벌거나 큰 일을 이뤄내진 못했다.
최익성은 “세상엔 수없이 많은 저니맨들이 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잣대 속에선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하지만 세상의 기득권 속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밑바닥까지 내려갈 순 있어도 계속 도전하는 마음이 있는 한 실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작은 성공에 교만할 필요도 없다. 그 역시 인생 여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저니맨 정신”이라고 말했다.
저니맨 정신... 여전히 뭔가 애매하고 모호하다. 최익성은 이런 말로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지구를 구한다. 하지만 저니맨은 위기에 빠진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누적된 부의 불평등 분배는 소수의 성공과 부의 세습을 만들었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사회적 기준의 성공에 미칠 수 없는 사람들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경쟁에서 밀린 사람들은 너무도 많은데 세상은 온통 성공한 자들의 생각대로 움직여간다. 속칭 ‘루저’들에게 세상은 너무도 버거운 벽이다.
최익성은 말한다. “세상의 기준에서 밀린 사람들에게 세상이 해줄 수 있는 건 동정이나 큰 도움 안되는 정책 몇가지가 전부다. 그들을 안아줄 수 있는 법 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을 갖게되면 결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내가 저니맨 정신을 잃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최익성은 아직 성공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 역시 여행중에 얻은 작은 성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여행은 아직 많이 남았고 그가 도전해야 할 것도 수 없이 많다. 그의 말대로라면 최익성은 아직 실패도 성공도 없는 여행자일 뿐이다.
최익성은 “성공은 흔히 이미 성공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만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다르다.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래서 끝까지 도전하는 한 실패란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저니맨의 목표다. 숫적으로는 저니맨이 필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세상이 날 버린 것 같아도 나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진영의 기적을 보며 최익성이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손진영이 번번히 경연에서 이겨낸 것은 대중의 귀가 그의 노래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음악의 주류가 인정한 음악, 또 세련되고 정제된 음악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진심과 뚝심 하나로 대중의 인정을 받아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손진영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진 것도 변변찮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도 확실치 않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그 속에 겨우 포함됐다고 해도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이것이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손진영의 진지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표정은 그런 대다수 사람들에게 ‘도전’의 기운을 끌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손진영이 비단 심사위원들의 마음만 사로잡지 못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가 왜 여전히 남아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역시 지금의 위치를 성공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이미 실패 따위는 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진정한 저니맨이 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