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고립된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조윤희, 팔레스타인 봉사활동의 기록
  • 등록 2012-12-21 오전 10:25:17

    수정 2012-12-21 오후 1:25:18

배우 조윤희가 팔레스타인 제닌 난민촌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바다(사해)를 구경시켜줬다.
팔레스타인. MBC ‘코이카의 꿈’ 측에서 처음 봉사 갈 지역으로 제안받았을 때 의외다 싶었다. 보통 봉사하면 아프리카를 떠올리잖나. 지인 중에는 날 만류하는 이도 있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영토 분쟁 중이다. 중동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유혈 사태가 빈번한 곳이다. 봉사 목적으로 떠난다지만 혹여나 내가 그곳에 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적잖이 들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쉽게 갈 수 없는 지역이라 되레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지난 10월4일. 팔레스타인에 도착했다. 정경호·이천희(배우)·김조한 오빠와 동행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요르단 강 서안 제닌(Jenin)의 난민촌. 전쟁의 상처가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쏜 총알이 머리를 관통해 시력과 후각을 잃은 한 아버지가 있었다. 총격으로 한쪽 눈이 없었다. 살아난 걸 신의 은총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3남매의 아버지였는데 두 아이의 얼굴은 몰랐다. 두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다쳐 아이의 얼굴도 보지 못한 것이다. 의료단에 모시고 갔는데 치료 방법이 없다더라. 가슴이 아팠다.

팔레스타인 제닌 아이가 조윤희 등 봉사단이 선물한 매직과 크레파스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전흔(戰痕)은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파리스란 아이는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스라엘 공격을 받았을 때 남은 상처다. 자신의 동생 칼리드를 보호하려 몸으로 감싸다 입은 상처란다. 전쟁의 잔혹함이 한 가족을 휩쓸고 갔다. 아이들의 갈색 눈에서 슬픔이 느껴졌다.

집이 없어 동굴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제닌에서 차를 타고 3~4시간 떨어진 곳. 해가 지면 암흑이 됐다. 전기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구호 물품을 가져갔는데 순식간에 동났다. 워낙 척박한 환경이다 보니 질서가 무너지기도 했다. 구호 물품 일부가 사라졌다. 어둠 속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기도 잠깐. 동굴을 나와 건너편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불빛이 요란스러웠다. 이스라엘 쪽 도시인 것 같았다. 흑과 백의 극명한 대비. 안타까움이 더욱 깊게 사무쳤다.

배우 조윤희가 전쟁으로 얼굴에 화상을 입은 파리스란 아이의 집을 찾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 60년 넘게 이어온 해묵은 분쟁. 이 갈등 속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자유를 잃었다. 꿈도 꾸지 못했다. 제닌 속 어떤 마을은 분리장벽으로 세상과 고립돼 있었다. 이스라엘의 경비는 삼엄했다. 5m가 넘는 콘크리트벽이 아이들의 희망을 통제하는 듯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태어나서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바다 보는 게 꿈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인근에 사해가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현실. 아이들과 사해를 찾았다.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유로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려 어렵게 찾은 사해. 하지만, 버스 안은 잔치판이 됐다. 바다를 본다는 설렘을 안은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도착하자 아이들의 눈은 순식간에 휘둥그레해 졌다. 비키니를 입은 외국 여인들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아이들과도 가까워졌다. 준비해 간 게임을 하며 아이들과 정을 나눴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시간을 함께 했다. 속옷이 너무 닳은 한 여자아이에게 따로 속옷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약속된 10일이 지났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파리스가 떠날 내게 선물을 줬다. 쌍둥이 사진에 ‘우릴 잊지 마세요’란 문구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았다. 눈물이 나왔다. 세린과 결연을 하고 편지를 주고받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이스라엘의 엄격한 통관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더 마음이 아렸다. 팔레스타인에서 맞은 내 서른 번째 생일. 파리스와 보낸 시간은 한국에서 보낸 내 29번의 어떤 생일보다 뜻깊었다. 그간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난민들에게 무관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다시 파리스를 볼 수 있을까. 이듬해 크리스마스를 세린과 함께 보낼 일을 꿈꾼다.

‘파리스, 날 잊지 마’를 머릿속으로 새기며.

조윤희가 팔레스타인 제닌 아이들과 놀이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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