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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애인 스포츠 1호 귀화선수 원유민(29)은 12살 때 이민 간 캐나다에서 소위 ‘잘 나가는’ 장애인 농구 선수였다. 그는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 캐나다 장애인 농구대표팀의 주전 선수로 자신의 첫 패럴림픽 메달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을 준비하며 노르딕스키 선수를 찾던 대한장애인체육회의 ‘러브콜’을 받았다. 지금 그의 손에는 농구공 대신 스키 폴대가 쥐어져 있다.
3일 서울 청담동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이데일리와 만난 원유민은 “귀화 제안을 받았을 때 오래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며 “당연히 농구 선수로 패럴림픽 메달을 목에 걸 가능성이 높았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다는 것이 더 끌렸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아쉬움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농구에서 정점을 찍은 게 아니니까”라며 “캐나다 장애인 농구대표팀이 세대교체에 성공했고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 유력한 메달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메달을 딸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원유민은 “막상 시작해보니 농구와 쓰는 근육이 너무 달랐다. 농구가 폭발적인 힘을 요구한다면 바이애슬론은 지구력 싸움이다. 처음엔 정말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하지만 심장을 부여잡고 언덕 정상에 오른 뒤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갈 때의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며 “올라갈 땐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라는 생각을 하고 내려갈 땐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반복한다”고 껄껄 웃었다.
원유민은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 순위를 끌어올리고 2022년 베이징동계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게 당면한 목표다. 화약 총을 쓰는 바이애슬론과 달리 장애인 종목에선 공기총을 쓴다. 바람의 영향이 큰 만큼 총이 몸에 익어야 한다. 또 사고로 새끼손가락을 잃은 오른손으로 격발을 하는 것에 적응하는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때문에 하루라도 더 빨리 세계 정상급에 도달하고 싶은 그는 행여나 카페인에 손이 떨릴까 봐 좋아하는 커피도 끊고 평창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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