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新速, '삼시세끼'..느린 밥상에 열광하는 심리학

평균시청률 7%+최고시청률 10% 육박..'조용한 돌풍'
3040 주부, 요리프로의 연장선으로 '단란한 심야 시간'
2735 칼퇴족, 외로운 라이프의 '심심한 위로'
2040 초식남, 여행-요리-안정을 추구하는 성향 소비
  • 등록 2014-11-14 오전 8:10:02

    수정 2014-11-14 오전 8:10:02

‘삼시세끼’가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사진=tvN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신속(新速).’ 그야말로 새로운 속도다.

‘슬로우 예능’을 지향하는 케이블채널 tvN ‘삼시세끼’가 조용히, 무섭게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느린 템포로 빠르게 시청자를 섭렵하는 새로운 속도의 개념으로 또 하나의 예능 트렌드를 이끄는 분위기다. ‘삼시세끼’는 지난 7일 전국 평균시청률 6.8%, 최고시청률 8.3%를 기록했다. 40대 여성층에서는 평균 9.4%, 최고 10.1%까지 시청률이 올랐다.

강원도 정선의 시골 마을에 상추와 가지를 심은 텃밭, 조금 넓은 수수밭이 풍경의 전부다. 특별히 내세울 만한 매력은 없다. 스위스의 대자연, 페루의 역사는 없다. ‘할배’도, 뮤지션도, 청춘의 조합도 없다.

배우 이서진과 그룹 2PM의 옥택연, 강아지 밍키에 염소 잭슨이 출연진의 전부다.

제작진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짜릿한 구도, 낯선 곳에서 만나는 우연한 사람과의 에피소드도 없다. 자급자족으로 구한 재료로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이서진과 옥택연의 좌충우돌이 전부다. 정선에서의 밥상이 안기는 느림의 미학에 열광하는 심리, 그 마음을 들여다봤다.

이서진은 맷돌에 원두를 갈아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먹었다.(사진=tvN 제공)
△3040 주부, 요리 프로그램의 연장선

‘삼시세끼’는 요리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있다. 아침엔 염소 젖을 짜 만든 리코타치즈 샐러드를 만들고 맷돌에 원두를 갈아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점심은 쪽파전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가지무침에 삽겹살 구이로 배를 채운다. 모든 음식은 직접 만든다. 솥뚜껑에 고기를 굽고 깍두기도 손수 담근다.

‘삼시세끼’는 ‘2049 여성’을 타깃으로 한 푸드 채널 올리브TV의 속성과 닮았다. 집중해서 시청하기보단 일단 틀어놓는 식으로 즐긴다. 맛집을 소개하는 ‘테이스티 로드’를 보며 군침을 삼키다 라면을 끓여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보는 시청 패턴과 비슷한 흐름이다.

‘삼시세끼’의 한 관계자는 “오후 10시 예능은 저녁 식사 후 입이 심심할 시간대 즐기는 콘텐츠다. 음식이 소재라 요리 프로를 즐기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주부에게 어필되고 있다. 과하지 않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과 야식을 먹거나 다과를 곁들며 대화할 수 있는 여백의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기를 먹기 위해 수수를 베는 이서진과 옥택연의 ‘노예 12개월’은 ‘불금’에 칼퇴근한 외로운 직장인의 연장선상에 있다.(사진=tvN 제공)
△2735 칼퇴族, 라이프스타일의 평행선

‘삼시세끼’는 소위 ‘불금’에 방송되는 예능이다. 10%에 육박하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배경엔 ‘칼퇴족(族)’의 충성도가 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삼시세끼’를 즐겨보는 20~30대 시청층은 구체적으로 27세와 35세 사이로 분석된다. 직장인에 해당하는 연령층이다. 적어도 오후 9시엔 집에 도착해 TV를 켤 여유가 있는 직장인에게 ‘삼시세끼’는 소소한 위안인 셈이다.

‘삼시세끼’ 속 이서진과 옥택연의 모습도 애처롭게 그려진다. 이서진과 옥택연은 고기를 먹기 위해 수십 kg의 수수를 베어야한다. ‘노예 12개월’을 산다는 푸념은 한 주 간 업무에 지친 직장인의 마음에 와 닿는 농담이다. 집에서도 저녁을 함께 할 사람이 마땅히 없는 이들에게 ‘삼시세끼’는 나 홀로 식사도 외롭지 않을 동지이기도 하다. ‘삼시세끼’는 이들의 외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연장선 상에서 감정을 이입시킨다.

△2040 초식男, 킬링타임의 최적선이다

‘삼시세끼’는 남자 시청자에게도 인기다. 케이블TV 유가구 기준으로 남자 10대부터 50대까지 전 연령층에서 시청률 1위를 나타내고 있다. 스포츠 중계, 자동차 프로 등을 편성하는 XTM 채널보다도 이 시간만큼은 ‘삼시세끼’가 우세하다.

‘삼시세끼’를 보는 남자들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주부 시청자와 함께 보는 집안의 가장이나 ‘칼퇴족’에 속하는 20~30대 남자 직장인을 제외한 20~40대 남자 시청자에게서 ‘초식남(男)’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초식남’은 연애보다 자기 관리가 중요한 남자, 남자다움 보다 부드럽고 예민한 여성성을 띄는 남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요리에 흥미가 있고, 나홀로 여행을 즐기는 성향이다. 발 빠르게 트렌드에 맞추기보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 안정을 찾는다. 밥 한 끼 만드는 데 2시간이 걸리고 대화도 거의 없이 보내는 옥택연, 이서진의 투박한 24시간은 ‘초식남’이 그들의 취향을 소비하는 시간과 유사하다.

연출을 맡은 나영석 PD는 “고른 연령대의 시청자에게 사랑 받을 거라 예상하진 못했다. 기본적으로 요리 ,여행, 여가, 여유 등 현대인이 누리고 싶은 보편적인 소재가 녹아있기 때문에 다양한 집단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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