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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딱히 정해진 틀은 없다. 여섯 명의 남자들과 한 마리 개는 자신들의 집을 떠났다가 돌아올 뿐이다. 굳이 정해져 있는 것을 찾자면 그 기간이 '1박2일'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짧은 여정은 단순하고 유치하다. 먹을 것과 잠자리 때문에 아옹다옹 하는 그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 도시를 벗어나 야생으로 떠난 그들의 1박2일간 생존기가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대세를 장악하고 있는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이다.
MBC '무한도전'의 아류라는 초기의 비난에서 어느덧 자유로워진 '1박2일'은 현재 야생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시청자들에게 남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강호동을 비롯해 김C, 이수근, MC몽, 은지원, 이승기 그리고 국민견(犬) 상근이는 매 주말마다 전국 각지를 돌며 자신들의 성격과 일상의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꾸밈없이 전달한다.
시청자들은 여섯 명의 남자들 가운데 특히 은지원과 이승기에게 주목한다. 어느새 자신들의 이름 앞에 ‘은초딩’과 ‘허당선생’이란 별명이 자연스러워진 두 남자는 ‘1박2일’을 통해 무대 위에서 보여줬던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이 코너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젝스키스라는 아이들 그룹의 리더였던 은지원과 2004년 귀공자 타입의 미소년 가수로 데뷔해 숱한 누나들을 설레게 했던 이승기는 어느새 ‘1박2일’의 아이콘으로 부상해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 은지원, '여섯 개의 수정'에서 '초딩의 대명사'로
초등학생처럼 유치하고 천방지축이란 의미에서 ‘은초딩’이라 불리는 은지원은 1978년생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서른 한 살. 즉 은지원의 동갑내기 중 교육대학을 바로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면 대략 7년차에서 8년차의 경력을 쌓았을 나이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생들 중에 은지원을 보며 자신의 담임선생님과 같은 나이임을 짐작할 수 있는 어린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은지원은 1997년 독일어로 여섯 개의 수정이라는 의미의 아이들 그룹 ‘젝스키스’의 리더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젝스키스’는 아이들 그룹의 선두주자였던 H.O.T와 함께 가요계의 양강 구도를 구축하며 십대 팬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았다.
당시 은지원의 이미지는 다소 무표정한 얼굴에 거친 댄스를 소화해 내는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남성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세 명을 블랙키스로, 깜찍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세 명을 화이트키스로 나뉘어 이미지 메이킹 했던 젝스키스에서 은지원은 이재진, 김재덕과 함께 블랙키스로 분류됐다.
젝스키스는 이후 4년 정도의 전성기를 구가한 뒤 2000년 5월 공식기자회견을 통해 해체를 선언한다. 해체 선언문을 읽는 일도 리더 은지원의 몫이었다. 젝스키스의 해체 이후 은지원이 선택한 것은 힙합이었다. 댄스가수로 분류되던 그가 힙합을 들고 나왔을 때 가요계 반응은 냉담했다.
H.O.T의 문희준이 로커를 자임하며 등장했을 때 수많은 안티 팬이 생겨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문희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G라는 예명으로 래퍼에서 힙합전도사로 나선 은지원에게 문희준의 안티팬들은 차라리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 이승기, '누나들의 로망'에서 '허당선생'으로
1987년생인 이승기는 2004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데뷔곡 ‘내 여자니까’로 단숨에 누나들의 로망으로 떠올랐다. 당시만 해도 이승기의 상품성(?)은 가수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승기의 1집 앨범 ‘나방의 꿈’을 프로듀싱한 싸이는 이승기 홈페이지에 “이승기 군의 노래를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끌렸습니다. 다듬어지지 않는 듯 투박하면서도 그 속에 잔잔히 다가오는 감성 터치가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고 밝힐 정도였다. 이랬던 이승기가 예능 프로그램의 블루칩으로 떠오르리라 예상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물론 이승기는 지금도 가수로서 왕성하게 활동 하고 있다. ‘1박2일’에서도 2집 앨범의 홍보를 위해 자신의 노래를 서슴없이 부르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제 이승기는 누나들의 마음을 흔들던 귀공자 가수 이미지가 아닌 '허당선생'으로 널리 그 이름을 떨치게 됐다.
이승기가 ‘1박2일’ 내에서 헛일과 허탕을 일삼으면서도 자기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김C가 붙여준 호 ‘허당’은 현재 ‘은초딩’과 함께 ‘1박2일’이 만들어낸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기도 하다.
가수 데뷔 후 연기자로서도 재능을 보이고 있는 이승기는 드라마 속에서도 모범생과 귀공자 이미지가 강했다. 극중에서 철없고 귀여운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1박2일’에서 만큼은 아니었다.
예컨대 강호동과 이수근은 본업이 개그맨이기 때문에 ‘1박2’일에서 망가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김C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여유로움으로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게 ‘1박2일’에 적응했다. MC몽과 은지원도 이전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1박2일’에 합류했다.
그러나 애초 노홍철의 빈자리를 대신 한 이승기에게는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덕분에 ‘누나들의 로망’이었던 이승기의 ‘1박2일’ 속 모습은 파격적이었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점진적 변화 없이 단숨에 이미지가 달라져서다.
◇ ‘1박2일’ 집안의 문제아들, '은초딩'과 '허당선생'
은지원과 이승기는 아홉 살 차이가 난다. 쉽게 말해 은지원이 무대 위에서 젝스키스의 리더로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을 때 이승기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나 ‘1박2일’에서 은지원과 이승기의 나이차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사실 ‘1박2일’ 내에서 모든 멤버들 간의 나이차가 무의미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박2일’의 구성을 보면 묘하게 한 가정의 모습과 겹친다.
‘1박2일’ 내에서 강호동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구심점이자 때로는 다른 멤버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있다. 일종의 아버지 역할이다. 김C는 MC몽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처럼 외모와 배치되는 모성애(?)로 멤버들을 다독거린다. 이수근은 마치 집안에서 눈칫밥 먹는 백수 삼촌처럼 다른 멤버들과 묘하게 겉돌면서도 툭툭 치는 웃음을 선사한다. MC몽은 삼형제 중 둘째처럼 형 은지원과 동생 이승기 사이에 갈피를 잡지 못해 김C에게 늘 투정을 부린다.
이승기 또한 마찬가지다. 은지원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수그리기보다 관철시키기 위해 눈에 힘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들의 다툼에는 특별한 악의가 없다. 앞에서 투닥 거리다가도 뒤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 팀을 이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은지원과 이승기의 관계는 ‘1박2일’의 내부적인 역동성을 부여하며 ‘1박2일’ 전체적인 하모니에 액센트를 부여하고 있다.
‘1박2일’ 제작진의 한 관계자는 “출연자들 가운데 둘의 성격이 가장 비슷한 점이 많다”며 “둘 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 데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잘 보지 않는 점에서 닮았다”고 밝혔다.
◇ 은초딩과 허당선생의 앞날은?
최근의 추세로 보면 당분간 은지원과 이승기는 ‘1박2일’의 인기와 함께 대중들에게 환호를 받는 스타의 위치를 확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은지원과 이승기가 언제까지나 1박2일의 ‘은초딩’과 ‘허당선생’으로 연예계 생활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의 본분과 시작은 가수였기 때문이다.
젝스키스 해체 뒤 힙합의 외길을 걸어왔던 은지원은 힙합뮤지션으로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은지원의 음악을 좋아했던 팬들은 최근 ‘은초딩’으로 초등학생들과 동일시 되어가고 있는 은지원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행여 은초딩의 이미지가 그가 이룬 음악적 성취까지 폄하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실제로 은지원은 젝스키스 시절에도 작곡 실력을 뽐냈고 솔로로 독립한 이후 대부분의 앨범에서 자신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붙였다.
이승기는 ‘1박2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출발이 가수임을 망각하지 않으려 애 쓰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고 있다. 제작진 사이에서 이승기의 또 다른 별명은 '홍달이'다. 홍보의 달인을 줄여서 만든 별명만큼 이승기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앨범홍보에 적극적이다. 그만큼 가수에 대한 애착이 크다는 증거다.
예능프로그램은 당대의 대중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주지만 훌륭한 뮤지션은 당대 뿐만 아니라 후대의 대중들에게까지 감동을 안긴다. 그 지점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가수들의 본질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현재 은초딩과 허당선생 이미지는 본인들에게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안겨주고 있지만 그들의 출발과 정체성은 엄연히 가수다. 예능프로그램의 뛰어난 엔터테이너가 아닌 한국의 대중가요사에 족적을 남길 가수로서의 꿈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때까지 대중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로 꾸준하게 활동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이 진정 헤쳐나가야 할 곳은 오지의 여행길이 아닌 스스로의 가수인생이다. 그리고 가수로서 그들의 앞날이 지금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1박2일'의 여행길보다 더 험난할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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