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FF 2007] 부산국제영화제, 오랜 전통 깨고 정치외풍 타나

정치인들의 유세의 장 되어버린 영화인의 축제
  • 등록 2007-10-07 오후 5:42:29

    수정 2007-10-08 오후 2:14:14

▲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권영길, 이명박, 정동영(왼쪽부터)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올해로 12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치외풍을 타는 것 아닌가’ 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다.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정치외풍으로부터 영화제 관객과 영화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썼고, 그 모습이 부산영화제의 전통으로 자리잡았으나 올해는 정치외풍에 흔들리는 분위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4일 개막식 현장에서 올 연말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 대통합신당의 정동영 예비후보 등 각 정당의 후보들이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제에 참석한 영화배우들과 감독들이 주로 서는 레드카펫 행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영화인들을 보기 위해 참석한 관객들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제 개막식은 관객과 영화인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지 정치인들의 유세의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후 정동영 예비후보와 권영길 후보는 개막식 참석 후 어색한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이명박 후보는 한나라당 의원들과 관계자 20여명을 대동하고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 1층에서 열린 ‘영화인의 밤’에 참석했다.

‘영화인의 밤’에 참석한 영화제 관계자들에 따르면 영화인의 밤은 이명박 후보의 등장 후 마치 이명박 후보 후원회의 밤 인양 진행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일부 중견 영화인들은 이명박 후보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고 전했다. 영화제의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1997년 10월, 연말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열린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올해와 유사한 상황이 있었다.
 
당시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부산영화제에 몰린 관객들에게 유세를 하기 위해 영화제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개막식 때는 김대중 후보의 참석을 알리는 장내방송 한마디 나가지 않았다. 이틀 뒤 이회창 후보가 남포동 PIFF광장의 단상에 오르려 했으나 영화제 측은 “이곳은 어디까지나 영화인의 잔치마당” 이라며 이를 적극 만류했다.

김대중 후보나 이회창 후보나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었지만 이들은 끝내 영화제 측에 저지를 당했던 것이다. 정치인들의 외풍으로부터 영화제를 보호하고 영화인들과 관객들을 위한 영화 축제로 만들기 위한 영화제 측의 단호한 입장은 이후 부산영화제의 전통으로 남았다. 2002년 대선에도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부산영화제를 찾았지만 영화제 측에서는 공식적인 접견이나 특별 대우를 하지 않았다.

지난 몇 해 동안 부산영화제의 스태프로 활동해오고 있는 한 관계자는 “부산영화제의 주목도가 높아 정치인들이 참석 가능 여부를 물어오는 경우가 잦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젊은 관객들이 정치인들의 참석을 전혀 반기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꼬집었다.

영화제 조직위의 한 관계자는 “영화제 측에서 정치인들을 먼저 초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대통령 선거와 겹치는 5년마다 정치 외풍을 막으려는 영화제 측과 정치계의 줄다리기는 계속돼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며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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