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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고, 질병 등으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됐다. 이들은 인생에 찾아온 깊은 실의와 좌절을 스포츠로 이겨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패럴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신의현(38·창성건설)도 후천적 장애를 얻은 케이스다.
신의현은 26살 대학생이던 2006년 2월 대학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뒤에 깨어나보니 두 다리가 없어져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아픈 시간은 계속 됐다. 3년간 집에서 나오지 않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랬던 신의현에게 새로운 세상을 선물한 것은 스포츠였다. 처음에 휠체어 농구로 시작해 장애인 아이스하키, 휠체어 사이클까지 도전했다. 농사로 단련된 강한 체력과 끈기, 스포츠에 대한 열정은 그를 대한민국 장애인 스포츠의 에이스로 이끌었다.
2015년 민간기업 최초의 장애인 실업팀인 창성건설 노르딕스키 팀에 합류한 신의현은 2년 만에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지난달 핀란드 부오카티에서 열린 세계장애인노르딕스키 월드컵 바이애슬론 7.5㎞ 남자 좌식부문에서 우승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바이애슬론 12.5㎞ 남자 좌식부문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패럴림픽에선 노르딕스키와 바이애슬론 2관왕에 도전한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에는 꽃제비 출신의 탈북 청년도 있다. 바로 최광혁이다.
최광혁은 13세 때인 2000년 5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여동생과 기차를 올랐다. 하지만 역무원을 피해 도망가는 과정에서 떨어졌고 왼발이 깔려 무릎 아래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2001년 8월 탈북에 성공한 최광혁은 2011년부터 전직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의 교직원 소개로 스틱을 잡았다. 이후 실력을 키워 당당하게 국가대표로 뽑혔고 이번 패럴림픽에 참가하게 됐다.
이들 외에도 구구절절한 사연은 한가득이다. 장애인 스노보드에 출전하는 최석민(50)은 19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쪽 발목을 잃어 장애인이 됐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두려워 도피처로 찾은 것이 바로 낚시였다. 15년이나 낚시 프로로 활동하며 각종 대회 우승을 쓸어 담았다.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치면 유명한 낚시 프로로 다양한 활동을 검색할 수 있다.
낚시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최석민의 인생을 다시 바꾼 것은 2002년 스노보드를 접한 후부터였다. 이후 평소에는 낚시용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면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거의 살다시피했다. 개인 코치와 함께 선수로서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결과 평창 패럴림픽을 앞두고 태극마크를 다는데 성공했다.
역시 스노보드에 출전하는 김윤호(35)도 18살이던 2001년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이후 방황의 시간을 이겨내고 아이스하키를 거쳐 스노보드 선수로 변신했다. 타고난 운동능력을 앞세워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가대표로 발돋움했다.
여자 크로스컨트리 스키에 출전하는 이도연(46)은 대한민국 선수단에서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사이클과 마찬가지로 어깨와 팔, 손의 힘을 쓰는 게 관건인 노르딕스키를 통해 동·하계 패럴림픽 동시 메달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한다.
장애인 알파인스키의 국내 최강자인 이치원(38)은 7세 때 소아마비로 두 다리에 장애가 생겼다.
20대까지 휠체어농구와 휠체어 테니스를 오가며 엘리트 선수로 활약한 이치원은 특히 농구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1999년 방콕, 2002년 부산, 2006년 쿠알라룸푸르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금, 은,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1년 알파인스키로 전향한 이치원은 2014년 소치 대회에 서 경기 도중 기문을 지나치는 실수를 저질러 메달을 놓쳤다. 이번에는 4년 전의 아쉬움을 만회한다는 각오다.
그밖에도 같은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이정민(32)은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조정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애인 아이스하키의 장동신(42)은 27살에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후 휠체어 펜싱에 입문해 2002년 부산 장애인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