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하라 1994.(사진=tvN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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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아이와 어른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 게임이 공정해지려면 ‘핸디캡’이 필요하다. 어른이 한 보 뛸 때 다섯 걸음을 뛰어야 하는 아이를 위해 우린 “좀 더 앞으로 와서 뛰어”라고 이야기해준다.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의 경쟁도 5,6년 전엔 그랬다. 그때 상황으로 대화를 구성한다면, “너 ‘응답하라 1994’ 봐?”라고 물었을 때 “우리 집은 케이블 안 나와서 못봐”라는 대답이 나오는 식이었다. 케이블 가입 가구가 많지 않았던 당시 케이블TV 프로그램이 시청률 2%를 넘기면 지상파 시청률 20%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평가됐다. 케이블TV가 10배 뒤쳐지는 상황에 힘입어 케이블TV는 ‘시청률 위주’의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시청률 하나로 폐지 기로에 놓이는 지상파 잣대와 달랐기 때문에 장르의 참신성, 캐릭터의 차별화, 제작 시스템 환경의 성장 등 내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벌었다.
그 중심에 놓인 채널이 tvN이다. 채널 개국부터 지금까지 방송 중인 ‘막돼먹은 영애씨’는 국내 최장수 시즌제 드라마다. ‘응답하라 1994’가 이끌고 ‘꽃보다 누나’가 쐐기를 막는 금요일 밤은 그야말로 ‘tvN 황금기’다. ‘응답하라 1994’가 전국 케이블 가입가구 기준으로 10%의 시청률을 넘겼고 ‘꽃보다 누나’가 10%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예전 공식대로라면 ‘응답하라 1994’는 전국민이 보는 드라마, ‘꽃보다 누나’는 국민의 98% 이상이 시청하는 예능프로그램인 셈이다.
| 꽃보나 누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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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국내 전체 가구 중 유료방송에 가입되지 않은 가구는 10%가 안 된다. 지상파만 시청하는 가구도 전국 기준 8% 남짓. 열 집 중 아홉 집에서는 tvN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시청률조사회사 닐슨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케이블 프로그램 시청률을 집계하는 표본 집단과 지상파 집단을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며 “지상파 표본이 200가구 정도 많은 수준”고 밝혔다.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이 5,6년 전 보였던 ‘10배 격차’는 요즘 시대에 분명한 ‘과장’됐다. 이러한 변화는 케이블TV와 지상파 방송 간 ‘핸디캡 경쟁’을 끝내도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 제작사 대표는 “요즘 케이블TV의 킬러콘텐츠는 온라인 파급력까지 더해져 지상파 콘텐츠를 넘어선다”며 “시청 환경도 케이블TV가 더이상 약자가 아닌 만큼 지상파와 대등한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바라보는 방송관계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케이블강자 tvN’은 이제 이중성을 벗어야 할 때라는 분석도 나온다. 채널 인지도와 경쟁력을 높여주는 ‘킬러 콘텐츠’(Killer-Content)에서는 핸디캡을 거부한다. tvN은 ‘응답하라 1994’, ‘꽃보다 누나’, ‘꽃보다 할배’를 비롯해 소위 잘 됐다는 프로그램에 한해 시청률을 공개하고 있다. 시청률 조사 회사의 정식 자료가 아닌 tvN의 검토를 거친 ‘필터링 시청률’이라는 것도 문제다.
| 빠스껫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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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시청자들 관심 밖에 놓여 화제성에서도 밀리는 ‘킬드 콘텐츠’(Killed-Content)에선 여전히 약자 마인드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빠스껫볼’, ‘식샤를 합시다’, ‘청담동 111’, ‘더 지니어스2’, ‘팔도방랑밴드’, ‘섬마을 쌤’, ‘감자별 2013QR3’ 등이 대표적. 이들 프로그램의 시청률 자료는 제공하지 않는다. 낮아서다. 특히 방송가에서 알려진 ‘빠스껫 볼’의 평균 시청률은 1%에 못 미칠 때가 대부분. 24부작으로 기획된 ‘빠스껫볼’이 18회로 축소된 당시 시청률 저조로 인한 조기종방이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tvN은 “후반부 이야기를 6회로 줄이기 힘들어 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 확대 편성을 하지 왜 방송을 줄이지?”라는 시청자들의 의아함은 당연해 보인다.
tvN의 성장이 케이블TV 전체를 끌기엔 체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 그럼에도 지상파를 위협하는 콘텐츠 강국인 tvN 만큼은 시청자에게 공정한 성적표를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닐슨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어느 채널이나 시청률이 낮은 성적표를 공개하고 싶은 곳은 없다”면서 “요즘 tvN 콘텐츠가 열풍이라 전체 프로그램 시청률을 요청하는 분들이 많은데, tvN과 협의한 후 선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만큼 자유롭게 공개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