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어둠이 스며든 춘천종합운동장. 선수와 가족 등 3만여 명이 운집해 하루 종일 들썩들썩했던 춘천마라톤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행사장을 정리하기 위해 시설물을 치우고 쓰레기를 줍는 손길이 분주한 가운데 운동장 한쪽에서 갑자기 "우와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왼쪽 무릎 아래에 의족을 찬 한 남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한 바퀴를 돌고 있었다.
하지 절단 장애인이 2008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풀코스(42.195㎞)를 완주했다. 인천 만수동에 사는 박영길(43)씨. 26일 오전 10시에 출발한 박씨가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백윤걸(46)·권오석(35)씨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한 시각은 오후 5시45분25초. 7시간20분23초 만이었다.
박씨는 지체장애 4급이다. 왼쪽 무릎 아래가 없다. 플라스틱 의족을 끼우고 평소에도 절뚝절뚝 걷는다. 그런 그가 마라톤에 뛰어든 건 불과 열 달 전. 또 다른 페이스 메이커 박천식(59)씨의 조언 때문이었다.
"캐나다에 저 같은 장애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마라톤을 했대요. 처음엔 망설였지요."
하지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아빠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운동화를 들고 집 근처 공원에 나가 매일 2㎞씩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시험 삼아 5㎞와 10㎞ 마라톤에도 참가해 완주했다. 그러나 풀코스 마라톤은 이번이 처음. 게다가 하지 절단 장애인의 완주는 매우 드문 일이다.
박씨는 2001년 3월 절단수술을 받았다. 동맥이나 정맥에 염증이 생겨 혈관이 막히고 손가락이나 발가락부터 썩는 버거씨병(Buerger's disease) 때문이었다. 처음엔 엄지발가락만 잘랐지만 의사는 "무릎 아래까지 잘라야 한다"고 했다. 안 된다고 버텼지만 통증을 참기 어려웠다. 진통제를 하루 열 알 이상 먹어도 듣지 않았다. 무릎 아래 절단은 그에게 "인생이 끝장나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생계는 부인 성영미(42)씨 몫이었다. 고2 여름 주문진 바닷가에서 보고 박씨가 첫눈에 반한 부인이었다. 부인 눈에 박씨는 "조그맣고 다닥다닥 주근깨가 붙어 영 눈에 안 차는 남자"였지만 성실함만은 최고였다. 7년 연애 끝에 결혼, 딸 진숙(17)과 아들 종선(9)을 낳았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애들 분유와 학용품 하나 못 사주는 처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박씨가 처음 마라톤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인과 아이들은 펄쩍 뛰었다. 무리하다 재발하면 오른쪽 다리마저 잃을 수 있었다.
그래도 박씨는 그만두지 않았다. "마라톤보다 훨씬 힘든 일도 많다. 그걸 헤쳐 나갈 용기를 얻어야 한다"며 부인을 달랬다.
"기필코 완주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춘천마라톤에 도전했다. 그러나 30㎞ 지점을 넘으면서부터 '못하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종아리는 피가 안 통해 노래졌고, 절단 부위가 의족에 닿을 때마다 통증이 몰려 왔다. 하지만 그에겐 세상에서 가장 신바람 나는 응원이 있었다. 부인과 아이들이 사인펜으로 의족에 적어준 글귀였다.
"하느님이 당신을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며 마치는 순간까지 동행하십니다."
"아빠! 사랑해요! 파이팅!"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그는 의족을 벗어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금니를 악물고 다시 달리는 그의 얼굴엔 엷은 웃음꽃이 피어나 있었다.
"아내가… 보고 싶습니다. 옆에 있다면 메달을 걸어주고 꼬옥 안아줬을 겁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그는 집에서 기다리는 부인부터 찾았다. 의족을 벗으니 무릎이 온통 쓸리고 빨갛게 부었다. 관중들은 환호했지만 그는 눈물 괸 눈으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