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부스]기습과 기본 사이

  • 등록 2007-05-31 오전 11:17:21

    수정 2007-05-31 오전 11:17:21

[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5월30일 주니치-라쿠텐전

라쿠텐이 0-2로 뒤진 9회초, 라쿠텐은 호투하던 주니치 선발 아사쿠라에게 연속 안타를 뽑아내며 무사 1,2루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주니치는 최강 마무리 이와세(좌완)를 투입해 불 끄기에 나섭니다.

순간,'노무라 감독이 뭔가 색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됐습니다. 그에 대한 강한 이미지가 만든 결과겠죠.

노무라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의 최고 전략가로 꼽히는 명장입니다. 그만의 독특한 전략 중에는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도루왕 후쿠모토(역대 최다 도루 기록 보유자)를 잡기 위한 책략들 입니다. 그 중 압권은 단연 '고의 실책'이었죠.

투수는 일부러 견제 실수를 하고 미리 백업에 들어간 2루수가 펜스를 맞고 나오는 공을 잡아 2루로 뛰는 후쿠모토를 잡아낸다는 전략이 그것입니다.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노무라 감독의 성향을 알 수 있는 좋은 예 입니다.

다시 경기 상황으로 돌아가보면... 노무라 감독은 우선 3번 이소베에게 번트 지시를 내립니다. 이소베가 초구 번트를 실패해 볼 카운트는 1-0.

움직이기 좋은 카운트라 여겨졌습니다. 상대가 번트를 확신해 압박수비를 펼칠때 강공이 성공되면 그만큼 타구가 빠져나갈 구멍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이소베는 좌타자임에도 좌투수를 상대로 .377의 빼어난 타율을 기록중인 타자입니다.

그러나 노무라 감독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소베에게 내린 번트 사인을 거둬들이지 않았고 이소베는 느린 타구를 굴리며 감독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해 냅니다.

이때 이변이 생겼습니다. 1루수(대수비) 와타나베(히로유키)가 이와세를 제치고 공을 잡더니 3루로 공을 던진 겁니다. 그러나 발이 빠른 2루주자 와타나베(나오토)는 여유있게 세이프됐고 1사 2,3루가 될 상황이 무사 만루로 바뀌고 맙니다.

결국 주니치는 불어난 위기를 견뎌내지 못한 채 또 한차례 실책이 나오며 2-4로 역전패합니다.

기본의 승리였습니다. 노무라 감독은 마지막 찬스를 확실하게 틀어쥐기 위해 3번 이소베에게 번트를 밀어부쳤습니다. 동점주자가 모두 득점권에 있다는 것은 투수의 부담을 가중시켜 타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정석에 충실했습니다.

상대(이와세)가 강했기에 기본에 충실한 것이 더욱 위력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반대로 주니치는 한번에 너무 많은 것을 노렸습니다. 물론 기본에도 어긋나는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번트 타구가 나오면 포수는 공을 잡는 야수에게 던질 곳을 지정해줘야 합니다. 유일하게 야수들의 반대에 서서 주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니치 포수 다니시게는 이런 기본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와타나베도 2루 주자의 주력을 감안했더라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습'도 결국 기본이 잘 지켜질때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경기였습니다. '기습'이 빛나는 건 자주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따지고 보면 노무라 감독의 독특한 전략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지 늘 변칙으로 버텨왔기 때문은 아닙니다.

참고로 노무라감독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투수의 셋 포지션(와인드업 없이 투구하는 것)을 도입하고 이를 퀵 모션으로까지 발전시켜 결국 도루왕 후쿠모토를 막아냈습니다. 변칙이 아닌 정석과 기본으로 이겨낸 것이지요.

중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순철 전 LG 감독이 이데일리 SPN에 기고한 칼럼을 다시 한번 읽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칼럼 제목은 '기본기는 선수 생명이 걸린 문제다'였습니다.


(편집자 주) [인사이드 부스]는 정철우 기자가 SBS스포츠채널에서 일본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하며 든 생각들을 정리한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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