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제공] 박찬욱(46) 감독을 만난 건 23일 밤 9시 30분, 부산. 그는 지금 4월 개봉할 영화 '박쥐'의 후반 작업 중이다. 감독은 컴퓨터그래픽 등 영화 후반작업을 담당하는 회사를 찾아 부산에 온 것. 'AZ웍스'는 부산영상위원회와 국내 유명 후반작업 업체인 HFR이 공동출자해 만든 회사로 '영화산업 인프라 구축'을 기치로 내건 영화적 야심의 상징이다.
올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히는 '박쥐'는 흡혈귀가 된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흡혈귀 신부(송강호)는 친구의 아내(김옥빈)를 사랑하고 그녀로부터 남편(신하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아 고민에 빠진다. 박찬욱 감독 그리고, 박 감독과 '올드보이'(2003) 때부터 함께 작업한 이전형(37) AZ웍스 대표와 함께 영화 얘기를 나눴다.
―특수 효과를 많이 썼을 것 같다.
박="외모상의 변화는 없다. 송곳니가 자란다든가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실재(實在)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적인 흡혈귀'라는 표현이 모순적이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이="감독님 의도는 '절제된 흡혈귀'였다."
―주인공으로 신부를 택한 건 당신이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인가.
박="내가 도덕적인 질문을 제시하는 방식은, 주인공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도덕적 딜레마를 겪게 만드는 것이다. 신부는 숭고하고 헌신하는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선 남의 피가 있어야 생존하는 사람이다. 그런 딜레마 속 고뇌와 갈등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현재 무신론자다."
―어떻게 보면 캐릭터를 쉽게 선택한 것 같다.
박="관객 중에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이번엔 딜레마를 선명하게 설정했다. 그래서 제목이 '박쥐'다. 천사와 악마,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단호한 선택을 해야 하는 운명이다."
박="딜레마 속에서 해답을 찾다 보니 관객들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고, 그걸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폭력적 비주얼이 필요하다. 극단적으로 과장해야 질문이 명확해지니까."
이="감독님 작품의 비주얼 작업은 '삼합'과 비슷하다. 처음엔 냄새가 극도로 괴롭지만 어느새 그리워지고 중독된다. 더 고약한 냄새가 뭘까, 씹는 맛이 뭘까를 찾게 된다."
―송강호는 친구의 아내를 탐한다. 사랑이라 해도 금지된 욕망이다.
―당신도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가. 아니면 거꾸로 당신이 가장 금기시하는 걸 담으려 한 건가.
박="난 도덕적으로 꽉 막힌 사람이다. 룸살롱 한번 안 갔으니까."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에서 영감을 받았다던데.
박="에밀 졸라의 '떼레즈 라껭(Therese Raquin)'이다('떼레즈 라껭'은 졸라의 1867년 작으로 암담한 나날을 보내던 여인이 남편 친구와 불륜관계가 되어 남편을 죽이는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다 담겨 있다. 처음 그걸 읽었을 때, 외람되지만 마치 내가 쓴 것 같았다. (송)강호씨하고 친하기도 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지만 '박쥐' 캐릭터가 나와 제일 비슷한 인물이다. 확실히 남 얘기 같지 않다."
이="이 영화엔 밝은 부분도 있다. 밤에 송강호가 (김)옥빈을 데리고 옥상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송강호도 무척 밝게 표현됐다. 내가 감독님께 질문하고픈 게 있다. 음식 평론가들이 먹기 싫은 음식을 먹듯,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는 영화도 잘 본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박="내게 영화를 고르는 눈은 있는 것 같다. 대신 너무 센티멘털한 거, 닭살 돋는 건 싫다. 울고 짜고 하는 건 정말 싫다. 더 싫은 건 달콤한 영화다."
―그런데 왜 멜로 코드인가.
박="그런 쪽에도 관심이 생겼다. '친절한 금자씨' 때부터 여자에게 관심이 생겼다. 내 취향과 관심이 그쪽으로 간 거다. 다음 작품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영어 제목이 'Thirst'(갈증)다.
박="이블 라이브(Evil Live·두 단어는 거꾸로 쓰면 철자가 같다)였는데 'B스러워서(저예산 B급영화 같아서)' 바꿨다. 사지 절단하는 영화라는 오해를 살 것 같아서. 'Thirst'는 뱀파이어의 갈증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해준다. 김옥빈 입장에서도 금지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다. 이 제목, 미국 친구들한테 칭찬 많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