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과 더불어 관심을 모은 것은 염기훈, 이천수, 이근호가 펼친 골세리머니였다. 경기장에서, 그리고 TV로 평가전을 지켜보던 팬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이 장면들은 K리그의 그것과 비교되기도 했다
3人3色
골은 넣은 세 선수의 세리머니는 3인 3색이었다.
선제골의 주인공 염기훈은 코너 플래그 쪽으로 뛰어가며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점프를 하면서 A 매치 첫 득점의 감격을 나타냈다.
이천수는 2006 독일월드컵부터 시작한 특유의 세리머리를 펼쳤다. 검지 손가락으로 입과 하늘을 번갈아 가르키며 상의를 펄럭였다. 여기에 수원 삼성과의 컵 대회 4강전에서 골을 넣은 뒤 팬들과 기쁨을 함께 나눴던 것처럼 이번에도 관중들에게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면서 같이 기뻐하도록 했다.
A 매치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린 이근호의 세리머니는 색달랐다. 소위 ‘고릴라 세리머니’. 상대 골네트를 가르자마자 벤치로 달려가 고트비 코치와 함께 두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고릴라 세리머니’는 예전 대표팀 소집 때 퍼머를 하고 나타난 이근호에게 고트비 코치가 ‘타잔’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자 골을 성공시키면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자고 서로 약속하면서 부터 나왔다.
골 세리머니도 경기의 일부다
지난 16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부산아이파크와 전남과의 K 리그 경기. 부산의 안영학이 선취점을 뽑은 뒤 달려온 부산 선수들과 얼싸안고 기뻐하자 주심의 날카로운 휘슬소리가 울렸다. 골 세리머니를 일종의 시간 지연 행위라고 판단, 빨리 자기 진영으로 넘어가라는 뜻이었다.
뒤이어 전남의 동점골이 터졌다. 역시 선수들이 기쁨을 채 다 나누기도 전에 휘슬이 울렸다. 전남의 두 번째 골, 세 번째 골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김없이 주심은 선수들에게 어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
비단 이 경기뿐만이 아니다. K리그 경기를 보다보면 선수들이 골 세리머니를 마치기도 전에 주심이 휘슬을 불어 경기 재개를 재촉하는 경우가 많다. 수원의 김대의가 준비했던 스파이더맨 세리머니도 시간에 쫓겨 관중들에게-아들을 위해 준비했지만-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블 TV를 통해 자주 접하는 유럽 축구는 다르다. 선수들의 환상적인 슈팅과 골도 매력적이지만 골이 들어간 뒤 선수들이 펼치는 각양각색의 세리머니도 보는 즐거움을 두배로 만든다. 루니의 슬라이딩, 로비 킨의 덤블링, 크라우치의 로봇춤 세리머니등. 골 세리머니 자체가 보는 이를 즐겁게 하는, 축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셈이다.
K리그도 이렇게 변해야 한다. 경기의 질과 서비스 향상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인 골 세리머니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시간을 지나치게 잡아먹는 세리머니라면 문제가 있으나 그렇지 않을 경우 팬들을 위해서 선수들이 준비한 세리머니를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라크전 주심을 맡았던 일본의 도조 주심은 골 세리머니 때 휘슬을 불지 않았다. 만약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데 휘슬을 불고 경고를 했다면 제주 월드컵 경기장의 분위기는 과연 어떠했을까?
이전에 이천수가 펼친 속옷 세리머리 시리즈를 생각해보자. 당시 그의 세리머니는 팬들에게 매번 궁금증을 일으키며 다음을 기다리게 했다. K리그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이바지했음은 물론이다.
종교적,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는다거나 상의 탈의 등을 금지하는 룰은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이 룰을 벗어나지 않는 기발하고 재미있는 세리머니는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것이다. 팬들을 위해서다.